[사설] 건설사 부실, 그룹연좌제로 풀겠다는 은행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그룹사 소속 건설사들에 대한 금융권의 횡포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올해 3월 법정관리를 신청한 LIG건설 사례 이후 대기업 계열 건설사들이 경영난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하려면 은행권이 가혹할 만큼 그룹사 전체에 공동책임을 요구하면서 오히려 구조조정이 지연되고 있다는 것이다. 워크아웃을 결정하면서도 자구 노력으로 확보된 유동성을 채권단이 길목을 차단하면서 압류해가는 탈법적 케이스가 있는가 하면 충분한 담보를 제공했는데도 추가적인 담보가 필요하다며 자금 지원 요청을 거절해 결국 법정관리로 가는 사례도 있다. 모 그룹 건설사의 경우 그룹이 추가 지원을 거부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금융권이 소속 그룹 전체에 대한 여신회수를 추진하는 사태까지 빚어지고 있다.

금융권은 재벌그룹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등에 업고 개별기업이 아닌 그룹사 전체를 인질화하는 퇴행적 금융관행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의 금융이라면 개별 기업에 대한 신용평가가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음은 물론 땅 짚고 헤엄치기식 대출 영업을 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정부가 부실 계열사 전이를 차단하기 위해 공정거래법을 강화하고 상호지급 보증과 순환출자 등을 엄격히 금지하는 정책을 추진해 왔다는 점을 은행권은 잘 알 것이다. 모(母)기업이 상장사라면 이는 자회사에 부당한 지원이며 배임에 해당하는 범죄가 된다는 점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물론 건설사들이 무리한 개발사업 등으로 부실 기업으로 전락한 것을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금융권이 개별기업에 대한 대출의 실패를 그룹사에 대한 연대책임으로 모면코자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출은 개별기업에 대한 철저한 사업심사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지 연좌제와도 다를 바 없는 연대책임의 논리로 보호받아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