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만난 '깨달음의 꽃'

손정순 씨 등단 10년 만에 첫 시집 '동해와 만나는 여섯 번째 길' 출간
2001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한 시인 손정순 씨(사진)가 10년 만에 첫 시집 《동해와 만나는 여섯 번째 길》(도서출판 작가)을 펴냈다.

손씨는 마음 속에 담아두었던 오랜 시간들을 '길'의 은유와 '기행' 형식으로 57편의 시에 담아냈다. '길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어지는 생의 한 이동일까 무얼 만나려 우리 그 풍경 위에 서는가 이 길 다 벗어나 어느 굽이에 또 불붙는 절경 만들며 우리 삶의 한 구비 접게 될는지'('동해와 만나는 여섯 번째 길' 중)

그는 '기억의 풍경'을 따라 유년기의 성장통과 젊은 날의 방황,삶의 깊은 자각 과정 등을 서사적으로 들여다본다. 기억을 통해 스스로의 삶에 질문을 던지고 현실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몸짓이다. 늦가을 햇살을 등에 진 몽산포,단풍에 물든 방태산,겨울 파도가 쓸쓸한 독산,그리움으로 길 트는 마량포구 등 수많은 풍경들을 응시하며 스스로를 다시 발견한다.

'내 나이 열아홉,/서울은 팔팔 올림픽에 들떠 있었고/나는 김승옥의 '서울,1964년 겨울'을 읽고/'생명연습'을 읽고 '건'을 읽고/'무진기행'을 읽고 '염소는 힘이 세다'를 씹어 먹었네//다시 봄이 오고,잘난 애인은 매일 도서관 앞에서 선동을 주도하고/그 현기증나는 원형계단 앞에 나를 종종 앉혀놓기도 했네/대자보를 썼네,어머니가 가르쳐주셨던 그 붓글씨체로'('노고산동' 중)그는 '내 나이 열아홉'이라는 시간과 '노고산동'이라는 공간을 통해 젊은 날의 사랑과 그리움의 시간을 재구성한다.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기억과 고향 이야기 등 유년 시절의 추억도 애잔하게 펼친다. 붉은 이끼 낀 기와와 검붉은 벽돌이 유난히 많았던 외갓집,수몰지로 변해버린 고향 운문마을도 떠올린다.

문학평론가인 유성호 한양대 교수는 "지난날에 대한 섬세한 회상과 기억의 형식을 취하고 있고,과거에 대한 사실적 재현과 함께 시인이 갈망하는 현재적 삶을 담고 있다"고 평했다. 김명인 시인은 "풍경을 흩뜨려 음각으로 새기는 그만의 몰입이 있다"며 "시를 통해 삶의 웅숭깊음을 알아가려는 이 간절함은 실존의 드라마여서 더욱 감동이 깊다"고 했다.

손씨는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국문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다원예술 문화기획자 겸 출판인,문화계간지 '쿨투라' 편집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