亞 대표기업 삼성·하이얼…성공 비결은 '일치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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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카페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경제전문가 누리엘 루비니 교수가 아시아 경제 모델을 칭찬하고 나섰다. 정부가 직접 개입하는 아시아 경제 모델이 미국식 시장주의 모델이나 유럽식 사회복지국가 모델에 비해 훨씬 나은 대안이 될 것이란 주장이다. 때마침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한국과 중국의 대표기업 삼성과 하이얼에 대한 분석기사를 실었다. 서양 지식인들이 아시아 기업으로부터 자신들의 문제를 풀어낼 해답을 구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위대한 목표 설정해 놓고 임직원 모든 에너지 쏟아 미래 위해 현재의 안락함 희생
# 한국 삼성과 중국 하이얼의 성공이코노미스트는 한 분야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분야에 진출하는 것이 삼성의 성공전략이라고 분석했다. 국수공장으로 시작해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제조업체를 키워낸 삼성은 서양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신기한 존재다. 아시아식 자본주의 모델로까지 칭찬받는 삼성의 성공비결은 장기성장을 위해 단기이익을 희생하는 전략적 선택으로 요약할 수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휴대전화, 디램(DRAM), 액정디스플레이(LCD) 분야에서 과감한 투자를 통해 시장을 선점했다.
중국의 전자업체 하이얼은 정부 투자 기업이 민영화 과정에서 성공한 대표적 사례다. 전 세계 가전시장 매출 기준 1위에 오른 하이얼은 더 이상 중국 가전제품이 싸구려 복제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이얼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급부상한 데는 1985년 공산당이 지명한 대표이사(CEO) 루민의 공이 컸다. 삼성이 한때 그랬듯이, 루민은 직원들 앞에서 불량 냉장고 76대를 해머로 부수면서 품질을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이후 하이얼은 과감한 투자와 인수를 통해 성장했고, 현재 7000여명의 직원을 보유한 매출 21조원 규모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 통일된 정신의 힘,전략적 의도이코노미스트가 성공적인 기업의 사례로 삼성전자와 하이얼을 심도 깊게 분석한 것은 이례적이다. 최근까지도 서양인들은 아시아 기업에 대해 비판과 의심의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서양인들은 전통적으로 정부가 주도한 계획경제는 실패하기 쉽다고 여겨왔다. 그래서 자신에게 장점이 없다고 여기는 부분을 미련 없이 포기한다. GE가 시장에서 1, 2 등을 하지 못하면 과감하게 사업을 접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기에 아시아 기업에 대한 칭찬은 서양 지식인들이 더 이상 자신의 방법이 꼭 정답은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을 의미한다. 삼성과 하이얼은 분명 강점 극대화 전략으로 성공한 사례가 아니다. 오히려 정부 지원에 힘입어 무모하다 싶은 사업에 뛰어들어 성공한 사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의 계획경제만으로 두 기업의 성공을 설명할 수는 없다. 진짜 성공비결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일부 서양 지식인 중에는 일찌감치 ‘정신일도 하사불성’으로 요약되는 아시아 기업들의 성공비결을 눈치챈 이들도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인 1989년, 개리 해멀과 프라할라드는 일본과 한국의 기업들을 분석하고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 ‘전략적 의도(Strategic Intent)’란 논문을 실었다. 이 논문은 동아시아 기업들이 어떻게 세계적 기업으로 성공했는지를 설명해 주목받았다.
전략적 의도란 구체적인 전략도 특별한 역량도 아니다. 하지만 임직원의 생각을 위대한 목표에 고정해 일상의 모든 의사결정과 에너지를 온전히 목표달성을 위해 쏟아 붓는 태도를 의미한다.# 우리답게 성공하자
삼성과 하이얼의 성공사례는 객관적으로 열세에 머무는 기업도 전략적 사고와 사명감 넘치는 직원, 정부의 지원을 결합하면 성공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단기이익 지상주의에 내몰려 긴 안목을 잃어버린 미국식 시장주의 모델이나, 평등사회를 좇다가 무기력에 빠져버린 유럽식 사회복지국가 모델은 힘을 잃었다. 정부 주도의 아시아식 자본주의 모델이 새로운 표준이 되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전략적 의도에 조직을 정렬시켜 성공을 만들어낸 사례는 우리를 자랑스럽게 만든다.
개인이나 기업, 국가에 결국 일치된 생각만큼 강력한 무기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성공모델이 계속 늘어나길 바라는 마음이다.
김용성 <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