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무명의 기업인들에게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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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곳곳 누비는 수출 전사들…그 덕에 한층 높아진 한국 위상백인,흑인,황인,남자,여자….수많은 외국 변호사들이 찻잔을 들고 삼삼오오 둘러서서 와글와글 웃고 떠들면서 환담한다. 그 사이를 비집고 다니면서 처음 보는 낯선 사람에게 다가가서 명함을 건네고 잘 나오지 않는 영어로 말을 붙여본다. 상대방이 자기의 전문 분야가 기업자문이라고 하면 나도 기업자문 분야가 전공이라고 하고,상대방이 지식재산권이 전문이라고 하면 나도 같은 분야라고 한다. 어떻게 해서든 대화가 끊어지지 않게 하려고 애를 쓴다.
윤용석 < 법무법인 광장 대표변호사 ysy@leeko.com >
그래도 상대방은 별 흥미가 없거나 불쌍한 나라에서 온 변호사가 애를 많이 쓰는구나 하는 눈빛으로 측은하게 바라본다. 우리나라 안에서는 변호사라고 하면 모두들 관심을 기울여 주건만 외국에 나가면 한국 변호사는 아무 존재도 없고 참으로 초라하고 비참하다. 이렇게 20여년 전 우리나라 로펌 변호사들이 맨땅에 박치기하듯 국제업무의 길을 시작했다. 지금은 엄청나게 달라졌다. 국제회의에서 한국 변호사라고 하면 모두들 관심을 기울인다.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변호사는 물론이고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지역 변호사들도 우리에게 먼저 다가와서 말을 건네고 우리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한다. 중국 동유럽 중앙아시아와 같이 개방을 막 시작한 나라의 변호사들이 생소한 분위기에 식은땀을 흘리면서 열심히 우리에게 말을 거는 모습에서는 20년 전 우리의 모습이 연상되면서 그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게 된다.
이런 변화는 우리 변호사가 잘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기업인들이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니면서 수출을 하고 건설을 하고 사업을 일으킨 덕분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외국 변호사들이 우리에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말하면 우리를 통해 우리나라 기업의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분들의 피땀어린 수고 덕분에 우리 변호사까지 환대받는 셈이다.
올해의 국제변호사회(IBA) 연례회의가 10월31일부터 11월4일까지 두바이에서 열리고 있다. 2009년 스페인,2010년 밴쿠버,올해 두바이에 이어 내년엔 더블린 개최가 예정돼 있는 IBA 연례회의는 변호사업계의 가장 큰 국제행사이다. 이번 회의에는 세계 각국에서 5000명이 넘는 변호사들이 참가 등록을 해 각국의 동향 파악과 정보 교류에 중요한 장이 됐다. 올해는 두바이로 출발하기도 전부터 벌써 두바이에 도착하면 꼭 만나자는 초청 메일이 세계 여러 나라의 로펌들로부터 쏟아져 들어와서 누구부터 만날지 정리하는 일조차 바빴다. 과거와는 전혀 다른 우리나라의 위상에 격세지감을 느낀다. 지금도 전 세계를 다니면서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고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용감한 기업인들을 가진 우리나라는 복 받은 나라이다.
윤용석 < 법무법인 광장 대표변호사 ysy@leek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