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석 민노에 '끌려다니는 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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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표류"하는 행태를 보면 때론 민주노동당이 한나라당보다 더 얄밉다. "
야권연대에 휘둘려 강경노선만 추종…중도파 설 곳 없어
민주당 핵심 당직자는 3일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 처리를 둘러싼 여야 간 대치상황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민노당이 자력으로는 할 수 없지만 민주당이 안 되게는 할 수 있다는 점을 활용해 교묘하게 민주당을 이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제1야당인 민주당이 한 · 미 FTA 비준안에 대해 강경노선을 고수하는 것은 무엇보다 비준안 반대가 야권통합의 필수조건이기 때문이다. 손학규 대표와 김진표 원내대표는 원래 FTA 찬성론자들이다. 과거 노무현 정부시절 한 · 미 FTA 추진 때도 찬성입장을 보였지만 최근에는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재재협상을 주장하며 강한 반대파가 됐다. 미국과의 재재협상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을 감안할 때 사실상 한 · 미 FTA 처리 자체에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와 한 · 미 FTA 도입이 가져올 국내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는 게 표면적 반대 이유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내년 총선 · 대선에서의 승리를 위한 정치적 이해관계가 자리한다.
야권통합 전제조건으로 민노당 진보신당 등은 민주당과의 정책연대를 강조하고 있다. 여기엔 한 · 미 FTA 비준안에 대한 공동 전선도 포함돼 있다. 지난 6 · 2 지방선거와 10 · 26 재 · 보궐선거에서 야권 단일화의 위력과 한계를 체험한 민주당으로서는 끌려갈 수밖에 없는 처지다.
실제 범 야권이 결집한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이겼지만 민노당과의 단일화에 실패한 강원도 인제군수 선거에서 민주당은 72표차로 한나라당에 패했다. 민노당 후보가 1671표를 가져갔다. 수도권 의원들 사이엔 야권 연대 없인 수도권 선거가 어렵다는 위기감이 크다. 한 의원은 "단일화를 위해 민노당 등 소수 야당과 정책공조를 맞출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민노당은 정책연대로 민주당을 사실상 '볼모'로 잡은 채 필요한 지역구에서 자당 후보 공천으로 잇속을 챙기겠다는 것이다.
민노당 진보신당이 이날 손 대표가 범야권 통합을 위해 11월까지 추진위를 구성하고 12월 말까지 '민주진보통합정당'을 만들자는 제안을 즉각 거부하고 나선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민노당 측은 "민주당 중심의 무리하고 일방적인 통합 제안에 응하기 힘들다"고 거부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의 한 중진의원은 "통합을 외치고 있지만 우리 내부에도 민노당 등과의 통합에는 부정적 기류가 있다"며 "그런데도 내년 총선 때문에 저쪽 강경노선만 따라가는 상황이다. 절충안을 찾자는 중도파의 목소리가 원천적으로 차단된 채 떠밀려 갈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토로했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