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그리스 '빚 잔치'의 자승자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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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플레 피하다 무역균형 기회 놓쳐…적자의 무서움 깨닫는 계기 돼야수많은 기업들이 수출을 통해 달러를 벌고 나면 이를 원화로 환전하게 되고 이때 기업들은 환율의 움직임에 일희일비하게 된다. 변덕스럽게 움직이는 환율의 움직임은 그 자체가 고통이다. 환전시점을 잘못 잡으면 큰 손해를 보기도 하고 환율 변화를 이용해 추가로 수익 좀 얻으려다가 KIKO 같은 상품에 가입한 후 불상사를 당하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국내에서나 국제거래에서나 한 가지 돈을 사용하는 것은 참으로 편하고 좋은 점이 많다. 환율 걱정도 필요 없고 해외에 나가도 환전 자체가 불필요하니 그 편리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소위 최적통화지역의 아이디어는 여기서 출발했다. 노벨상 수상자 먼델 교수가 1960년대 초 이런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난 후 1999년 드디어 유로라는 단일통화가 출범했고 지금은 유로존 17개국이 이 돈을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다.
윤창현 <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 바른금융재정포럼 이사장 >
그러나 인간이 만든 제도에 완벽한 것은 없다. 이렇게 좋은 단일 통화제도가 가진 가장 큰 한계는 바로 흑자국과 적자국 간의 양극화 문제다. 예를 들어 보자.같은 돈을 사용하는 두 나라가 있다. 한 나라는 좋은 상품을 많이 만들어 수출하면서 흑자를 본다고 하자.이 나라에는 흑자폭만큼 돈이 들어오면서 풍족해진 돈 덕분에 경제는 활황이 된다. 반대로 다른 나라는 수출할 물건보다 수입할 물건이 많아서 경상수지 적자를 낸다고 하자.이 나라는 적자폭만큼 돈이 다른 나라로 빠져 나가면서 통화량이 줄어든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중요한 조정메커니즘이 작동한다. 흑자국은 돈이 많아지니 인플레가 발생해 물건 값과 임금이 올라가기 시작한다. 반대로 적자국은 돈이 밖으로 빠져 나가면서 고통스런 디플레가 발생하고 물건 값과 임금이 싸지기 시작한다. 이제 드디어 반전이 온다. 적자국은 물건 값이 싸지니까 수출이 잘되기 시작하고 흑자국은 물건 값이 비싸지다보니 수입을 늘린다. 마침내 적자국은 흑자로,흑자국은 적자로 돌아서면서 돈이 반대방향으로 흐른다. 이것이 바로 같은 돈을 쓰는 나라들이 인플레와 디플레를 경험하며 자생적으로 불균형이 해소되는 이론적 메커니즘이다.
그러나 유로존의 모습은 어떠했나. 만성적 적자와 함께 돈이 밖으로 빠져 나가면서 디플레이션의 고통을 감내했어야 할 남유럽 국가들은 꾀를 냈다. 바로 정부가 대규모 국채를 발행해 다른 나라로부터 돈을 빌려온 것이다. 적자 때문에 빠져 나간 돈이 국가 빚을 통해 다시 들어왔다.
게다가 그리스의 경우 정부 빚으로 가져온 돈을 국내에 풀면서 연금까지 후하게 지급해주니 국민들도 대환영이고 경제는 북적였다. 그러나 올 것이 왔다. 만성적 수지적자에 재정적자까지 겹치는 쌍둥이 적자가 지속되면서 잔치는 끝났다. 얼마 전 지루한 협상 끝에 유럽국가들이 구제금융제공과 빚탕감 등에 합의하기는 했지만 정상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그리스가 '죽음의 고통'을 겪으면서 지독한 구조조정과 물가하락 및 임금삭감 등을 통해 국제경쟁력을 회복하고 다시 경상수지 흑자국 지위를 달성해 돈을 벌고 빚을 갚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빚을 1000억유로씩이나 깎아주겠다는데 국민투표 운운하는 얘기가 들린다. 게다가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국가들이 허리띠를 졸라맬 수 있을지도 의심스럽다.
양극화 해소는 사실 한 국가 내에서도 힘든 과제다. 그러니 서로 다른 국가끼리 얼마나 해낼 수 있을까. 최적통화지역의 지속가능성은 결국 흑자국과 적자국 간의 불균형 내지 양극화 해소에 달려 있다. 흥청망청대던 적자국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흑자국 국민들을 설득해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 지원을 유도하는 것이 얼마나 가능할 것인가.
국가는 달라도 돈은 같이 사용하자는 최적통화지역의 순기능이 만성적 양극화라는 역기능에 힘없이 밀려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목도하며 '적자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는 단순한 교훈을 뼛속 깊이 깨닫게 되는 요즈음이다.
윤창현 <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 바른금융재정포럼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