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처럼 냉혹한 '짐승돌'의 세계

방송·엔터테인먼트 - 새 영화 '미스터 아이돌'
오디션 현장에서 밴드의 리더 유진(지현우)만 새로 결성할 그룹의 보컬 자리를 제안받는다. 나머지 멤버는 필요 없다는 뜻이다. 유진은 즉각 거절하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가난한 살림살이에 보탬을 줘야 할 처지니까.

4인조 '미스터 칠드런'에서 댄스와 랩 등을 하는 나머지 세 멤버들도 유진처럼 저마다 사연을 지녔다. 그들의 첫 임무는 노래나 춤이 아니라 몸만들기다. '미스터 아이돌'(감독 라희찬 · 사진)은 아이돌그룹의 탄생과 성공 스토리를 담은 기획영화다. 멤버를 캐스팅하고 훈련시켜 정상으로 끌어올리기까지의 과정을 세심하게 포착한다. 멤버들은 거칠고 뜨거운 '짐승돌'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들을 둘러싼 외부 환경은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의 정글처럼 냉혹하다. 이 두 가지 요소가 충돌하는 게 영화의 묘미다.

유진의 아버지는 아들의 기타 줄을 식칼로 끊을 정도로 노래하는 것을 극렬히 반대한다. 다른 멤버 현이(장서원)는 아들을 숨겨둔 가장이다. 입양아 출신 리키(김랜디)와 2PM 출신의 재범이 연기하는 지오까지 네 멤버는 모두 상처받은 영혼.이들은 다른 사람들과 주먹다짐을 하다 방송 출연 기회를 빼앗긴다. 또 다른 그룹의 멤버는 이성과의 스캔들로 목숨을 던지기도 한다.

미스터 칠드런이 어렵게 인기를 다시 얻기 시작할 즈음,이번에는 라이벌 기획사의 음모 때문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멤버들의 개인적인 욕망은 이처럼 외부 환경으로 인해 거듭 꺾인다. 그들은 영혼을 박탈당한 '상품'이다. 멤버들이 펄펄 끓는 캐릭터라면 그들의 음악과 안무,스케줄을 조정하는 천재 프로듀서(박예진)는 극중에서 가장 차가운 인물이다. 멤버들 앞에서 그녀의 감정은 거의 동요하지 않는다.

기획사 대표(임원희)의 역할은 프로듀서보다 상대적으로 약하지만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방송사 프로듀서의 손을 잡고 건물 난간에 올라가 출연 기회를 주지 않으면 떨어지겠다고 위협하는 대목이다. 이처럼 주변인들을 살펴보는 것도 이 영화의 묘미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