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한국의 파판드레우들

자리만을 생각하는 정치인들…증시의 건강을 해치는 도사들

하영춘 증권부장 hayoung@hankyung.com
그리스 총리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가 시사용어사전에 오른다면 풀이는 어떨까. '할아버지(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 손자와 이름같음)와 아버지(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에 이어 3대째 그리스 총리에 오른 사람'이라고 오를까. 정확하지만 아닐 것 같다. 그보다는 '개인 이익을 위해서라면 국익이나 시장은 나몰라라한 채 말을 밥먹듯이 뒤집는 사람을 총칭하는 말'로 풀이될 듯 싶다.

파판드레우 총리는 지난 며칠 글로벌 시장을 들었다 놓았다 했다. 구제금융안을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선언했다가 이틀 만에 뒤집어 버렸다. 그가 '정치도박'을 감행한 것은 자리 때문이다. 총리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국민투표를 제안했다가 자리가 위협받자 없던 일로 해버렸다. 위기에 빠진 그리스나 글로벌 시장은 안중에도 없었다. '파판드레우'는 그리스에만 있는 게 아니다. 국내에도 많은 파판드레우가 판치고 있다.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반대를 위해 거리로 나선 민주당 지도부가 그렇다. '반(反) FTA투쟁'을 이끌고 있는 손학규 대표와 정동영 최고위원,김진표 원내대표 등은 지난 정부에선 한 · 미 FTA 찬성론자였다. 아니 FTA를 주도했던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그때는 잘 몰랐다"는 말로 표변해 버렸다. "FTA는 신(新)을사늑약"(정 의원)이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내년에 치러질 총선과 대선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자리를 위해 소신도 헌신짝처럼 버렸다는 점에서 파판드레우와 닮았다.

한나라당 의원들도 다르지 않다. 퇴출 저축은행 피해자를 구제한다는 명분으로 집요하게 예금자보호제도의 근간을 흔들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지난 5월엔 예금자보호법 개정을 추진했다. 여의치 않자 8월엔 저축은행 국정조사 특위를 통해 보상 방안을 마련했다. 여론에 밀리자 최근엔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해 특별법 제정을 추진키로 했다. 영업정지된 저축은행에 예금자보호한도인 5000만원을 초과하는 돈을 맡긴 사람들을 구제하자는 게 골자다. 앞장선 사람들은 부산에 지역구를 둔 한나라당 의원들이다. 내년 총선 때 표를 의식한 행동이라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또 다른 파판드레우다.

증시에도 파판드레우가 수두룩하다. 외교통상부는 작년 12월 씨앤케이인터내셔널(옛 코코엔터프라이즈)이라는 회사가 카메룬 다이아몬드 채굴권을 획득했다고 발표했다. "추정 매장량은 연간 세계 다이아몬드 생산량(1억7000만캐럿)의 두 배가 넘는 4억2000만캐럿"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주가는 최고 5배까지 뛰었다. 하지만 매장량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면서 금세 고꾸라졌다. 애꿎은 소액투자자들만 피해를 입었다. 어디 외교부뿐인가. 미리 사놓은 종목을 투자자들에게 대박 종목으로 추천해 주가를 끌어 올린 '족집게 도사',허위매수를 내는 방법으로 자신이 산 종목의 주가를 오르게 해 증권사 실전투자대회 우승을 싹쓸이한 '실전고수'. '박원순주(株),나경원주'를 띄웠다가 재미를 봤을 법한 정체불명의 도사들. 이들 모두가 증시의 건강함을 좀먹는 파판드레우들이다.

파판드레우 용어설명은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일 듯 싶다. '국익과 시장원리를 깡그리 무시한 채 사익만을 추구하지만 결국은 있는 자리마저 빼앗기고 만다. 이런 사실을 정작 본인들만 모른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

하영춘 증권부장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