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총리 '퇴진'…2차 구제금융 '전진'

거국내각 구성 합의…내년 2월19일 총선
선친 포퓰리즘에 '발목'…40년 친구가 낙마 주도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그리스 총리가 퇴임하기로 했다. 파판드레우 총리는 한때 국제 외교가에서 '나이스 가이'로 불렸고 부패를 일소할 개혁가를 꿈꿨던 인물.재정위기의 미로에서 그리스를 탈출시킬 적임자로 기대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리스를 '정치 코미디판'으로 만들어놓은 채 포퓰리스트 딱지를 덮어쓰고 낙마했다. 일각에선 선동적 정치인이었던 아버지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전 총리가 뿌린 대중영합주의의 후폭풍으로 아들인 그가 파멸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파판드레우 빠진 거국 내각 구성키로파판드레우 총리와 제1야당인 신민주당의 안토니스 사마라스 총재는 6일 카롤로스 파풀리아스 대통령의 중재 아래 두 시간가량 만나 "새 연정을 구성해 2차 구제금융안을 비준한 뒤 즉각 총선을 실시키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그리스 대통령실은 성명을 통해 "파판드레우 총리가 새 정부를 이끌지 않기로 했다"며 파판드레우 총리의 퇴진을 확인했다.

차기 총리로는 루카스 파파데모스 전 유럽중앙은행(ECB) 부총재가 유력하다. 그리스 여야는 또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 등의 구제금융 집행 관련 작업에 차질이 없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기 위해 총선을 내년 2월19일에 치르기로 했다.

파판드레우 총리의 국민투표 요청을 계기로 불거진 정국 혼란이 수습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그리스 구제금융과 관련한 각종 불확실성은 상당 부분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독일 주간 슈피겔이 "연정의 성공이라는 도덕적 승리를 위해 총리직을 버리는 듯한 깜짝쇼를 벌였다"고 꼬집는 등 유럽 언론들은 막판 깜짝쇼를 벌인 파판드레우에 대해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얽히고 설킨 운명

외신들은 특히 파판드레우의 낙마에 40년 지기와 선친이 얽힌 묘한 '운명'에 주목했다. 사마라스 신민주당 총재는 1970년대 초 파판드레우와 아테네칼리지와 미국 앰허스트대를 같이 다닌 오랜 친구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친구(friend)와 적(enemy)을 합친 '프레너미(frenemy)'라는 용어로 설명하기도 했다.

파판드레우의 선친 안드레아스가 총리 시절 편 과도한 복지정책과 포퓰리즘의 폐해에 아들이 짓눌린 꼴이 된 것도 역사의 아이러니다. 안드레아스는 1981~1989년,1993~1996년 두 차례 총리를 역임하면서 "정책이 아무리 오락가락해도,국가재정이 엉망이어도,권력집단이 부패해도 대중이 무조건적으로 지지했던 전설적 포퓰리스트"(영국 경제주간 이코노미스트)란 평을 들은 인물.집권 기간 △보건복지 강화 △일반복지 및 연금 확대 △주요 기업 국유화를 단행했다. 이때부터 비대해진 그리스 공공부문은 국고를 고갈시켰고,공공부문의 비효율은 그리스의 발전을 가로막았다. 결국 "재정적자 축소보다 경기부양이 필요한 시기로 집권하면 30억유로 규모 경기부양책을 펴겠다"는 공약으로 집권한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총리는 아버지가 남긴 '유산' 뒤처리를 하느라 긴축정책이란 정반대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과거 신민주당 정권 시절 분식회계를 공개하고 정치부패를 일소하려던 노력조차 집권 막판 총리직 유지를 위한 '꼼수'탓에 빛이 바랬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