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미 FTA 효과' EU가 증명한다

EU 위기 속 中企수출 크게 증가…유럽서 보는 혜택 美서도 누려야
미국에 종속된다는 말 근거없어

안호영 < 駐 벨기에ㆍEU 대사 >
국민은 혼란스럽다. 한 · 미 FTA 국회 비준 동의 여부를 눈앞에 두고 누구 말이 옳은지 가늠하기 힘들다.

한 · 미 FTA와 한 · EU FTA는 내용이나 협약체결 상대의 경제적 규모,산업 수준 등에서 대동소이하다. 한 · 미 FTA에 대한 비판이 사실이라면 당연히 한 · EU FTA도 비난받아야 한다. 한 · 미 FTA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한 · EU 관계에서 이미 나타났어야 한다. 하지만 필자는 그렇지 않음을 현장에서 눈으로 보고 있다. 현재 발효된 지 120일 지난 한 · EU FTA가 가져 온 변화를 살펴보면 한 · 미 FTA에 대한 상반된 주장 중 어느 쪽이 맞는지 쉽게 알 수 있다. FTA의 교역 증가 효과는 확실하다. 만일 FTA가 없었다면 재정 위기로 인해 경제가 위축되고 있는 EU로의 수출은 훨씬 감소했을 것이다. 자동차(+91%),자동차 부품(+20%),석유 제품(+87%) 등 특혜 관세의 혜택을 받는 상품의 대 EU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7.4% 증가했다. 관세율 변동이 없는 상품의 수출은 41%나 감소했다.

EU로 수출되는 전체 202개 품목(지식경제부 수출입품목 분류 기준상)중 137개 품목(68%)의 수출이 증가해 효과가 전체 산업에 파급되고 있다. 특히 금형(+172%),공작기계(+134%),완구(+112%),축산가공품(440%) 등 중소기업 비중이 높은 품목들의 수출 역시 큰 폭으로 상승했다. FTA가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에도 도움이 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 · EU FTA 발효 이후 무역수지 흑자폭은 작년 같은 기간에 감소(49억1000만달러→10억7000만달러)하기는 했다. 이는 FTA상 관세율 변화가 없는 선박의 수출 감소(40억6000만달러→19억3000만달러)나 EU의 항공기 수입 증가(7000만달러→7억7000만달러) 등에서 비롯된다. FTA가 발효되지 않았더라면 교역규모와 흑자폭은 더 큰 폭으로 감소했을 것이다. 우리 경쟁국들이 앞다퉈 EU와 FTA를 체결하려 하고 있다. 인도 캐나다 싱가포르 등은 이미 EU와 협상을 진행중이고, 일본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도 문을 두드리고 있다. 모두 FTA로 교역을 증가시키고 시장을 방어하기 위해서다. 한 · 미 FTA가 우리 경제를 미국에 종속시키는 것이라면 이들은 EU에 경제적으로 종속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는 것인가?

브뤼셀에서 만나는 EU 관계자나 기업인은 한 · 미 FTA의 발효 여부나 그 시기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 · 미 FTA의 발효가 늦어지면 우리나라에서 미국 기업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는 기간이 길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EU가 우리나라와 FTA 체결을 서둘렀던 것은 한 · 미 FTA 때문이다. 1차 협상시 EU 협상 대표는 협상을 빨리 빨리(in a pali pali manner) 하자고 했다. 그 속타는 마음을 알 수 있지 않은가? FTA가 없을 경우 경쟁국에 시장을 뺏기고 FTA의 혜택은 경쟁국이 동일한 FTA를 체결하기 전까지 한시적으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 · 미 FTA가 고비에 서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해답은 이미 한 · EU FTA가 보여 주고 있다. 어떤 정치한 논리도 사실 앞에서는 무력하다. 한 · 미 FTA에 대한 비판적인 주장을 유럽 사람들이 듣는다면 뭐라고 할까. 우리 스스로 한 · 미 FTA를 무산시켜 버린다면 EU와 FTA를 체결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나라는 어떻게 생각할까. 겉으로 무슨 말을 하든 속으로는 미소지을 것이다. 그들이 웃을 이유를 생각하면 해답은 명백하다. FTA는 장밋빛 미래를 영원히 보장해주지 않는다. 그 혜택은 한시적이고 시간은 우리의 편이 아니다. 하루빨리 한 · 미 FTA를 비준해 우리 기업들이 EU에서 누리고 있는 혜택을 미국 시장에서도 누릴 수 있게 해야 한다.

안호영 < 駐 벨기에ㆍEU 대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