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미 FTA, 정부는 왜 뒷북만 치고 있나

박원순 서울시장이 국가 · 투자자 소송제도(ISD)의 재검토를 요구하는 내용을 담은 이른바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 서울시 의견서'라는 것을 발표하자 정부가 부랴부랴 관계부처 합동으로 반박 기자회견을 열었다. 서울시 주장이 전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지만 왜 꼭 일이 커진 다음에야 정부가 뒷북치는 식으로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동안 민주당 등 야당의 정치인들이 ISD와 관련해 사실관계를 왜곡하거나 과장하고, 온갖 괴담들이 인터넷 상에서 마구 돌아다닐 때 반박하는 자료를 내는 등 그나마 대응을 했던 것은 통상교섭본부 등 극히 일부 부처에 불과했다. 정부가 선제적 대응에 나서기는커녕 따라가기에도 바쁜 모습이었다. 그러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한 · 미 FTA에 태클을 걸고 나서는 등 파문이 지자체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서둘러 관련 부처들이 범정부적 공동대응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한 · 미 FTA라는 국가적 중대 사안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너무 안이하고 한심하다. 혹여 이것이 정권 말기 공무원들의 전형적 보신주의나 눈치보기 때문이라면 더욱 그렇다. 공무원들이 이런 식으로 일을 하니 괴담도 진실처럼 돌아다니고 급기야 자자체까지 말도 안되는 행동에 나서는 것이다. 서울시는 FTA 의견서에서 ISD 소송의 남발, 지동차 세율 인하 등에 따른 지방세 감소분 대책, 유통법의 무효화 가능성 등을 제기했지만 그야말로 황당하기 짝이 없다. 서울시 같은 지자체는 ISD 소송대상도 아니고, 자동차세율로 인한 세수 감소분에 대한 보전은 이미 합의가 끝난 문제다. 또 유통법은 한 · EU 발효 이후에도 여전히 유효하게 살아있다. 외교 · 통상은 중앙정부 고유업무이지, 지자체가 감놔라 배놔라 관여할 성질의 사안이 아니다. 그야말로 자치행정을 정치로 오염시키는 사례가 아닐 수없다.

이대로 가면 지자체가 FTA 문제로 갈기갈기 찢어질 판이다. 안이하게 판단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광우병도 초기 대응에 실패해 사태를 키우고 말았다. 합동 브리핑 한 번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범정부 차원의 체계적인 대응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