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예산 심사에 스며든 포퓰리즘

이호기 경제부 기자 hglee@hankyung.com
정부는 92조원에 달하는 복지 예산을 지난 9월 편성했다. 사상 최대 규모다. 이 가운데 복지정책을 총괄하는 보건복지부에 할당된 예산은 전체의 40%가량인 36조3454억원에 달했다.

복지부 예산 심사를 맡고 있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이 예산을 여야 합의로 1조361억원 늘렸다. 증액된 여러 항목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사업은 기초노령연금이다. 당초 정부안(2조9665억원)보다 5876억원 증가해 전체 순증액(1조361억원)의 56%에 달했다. 기초노령연금은 노무현 정부가 국민연금 개혁을 추진하면서 연금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현 세대 노인의 생계 지원을 위해 도입한 제도다. 소득 하위 70%에 속한 65세 이상 노인에게 1인당 약 9만원(올해 기준)의 돈을 지급한다. 복지위는 정부가 올해 '국민연금 가입자의 평균 소득액'의 5%로 책정했던 연금액을 6%로 늘렸다. 이렇게 되면 연금액은 내년 11만3000원으로 20%가량 늘어난다. 대상자 수도 기존 379만명에서 23만명 증가한 402만명으로 확대된다. 정부는 사망자나 소득기준 탈락자 등을 감안해 기준선을 하위 67.2%(월 74만원 이하)로 정했지만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70%를 다 맞추라고 한 데 따른 것이다.

정부 측은 복지위 결정에 반발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복지부는 예산 삭감이 아닌 증액에 대해서는 정부동의가 필요한 만큼,향후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심사 과정에서 이를 원상회복시키겠다는 방침이다. 정부 관계자는 "지금도 미신청 등으로 인해 연금을 받지 못하는 저소득 노인들이 적지 않다"며 "소득 기준선을 당초 74만원에 맞춘 것은 이 같은 현실을 감안한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복지위 주문대로 소득 기준선을 무리하게 올리면 저소득 노인이 받지 못하는 연금을 고소득자가 받아가는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며 "이는 재정건전성 문제를 떠나 복지철학 관점에서도 옳지 못한 처사"라고 꼬집었다.

국회는 기초노령연금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올해 초 발족한 연금제도개선특별위원회 활동조차 거의 하지 않고 있다. 활동시한이 연말로 다가왔음에도 지난 8월 이후 단 한 차례의 회의도 열지 않았다. 국회가 정부를 감시하기는커녕 '복지 포퓰리즘'에 빠져 본연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호기 경제부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