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검찰 악재' 속 사흘간 고민…마감 50분 남겨놓고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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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텔레콤, 하이닉스 본입찰 단독 참여지난 8일 새벽 검찰의 압수수색 이후 하이닉스반도체 본입찰 마감일인 10일까지 3일간 SK의 하루는 24시간도 모자랐다. SK그룹 수뇌부는 꼬박 이틀 밤을 머리를 맞대고 다양한 시나리오와 경우의 수를 검토했다. 10일 본입찰 마감까지 SK텔레콤 이사회 시간도 확정짓지 못한 채 막판까지 고심을 거듭했다. 본입찰을 앞두고 갑작스레 맞은 '악재'에 이은 '진통'의 결과는 '고(go)'였다.
이사회 오후 3시부터 난상토론…최재원ㆍ하성민, 사외이사 설득
한 시간여 격론 끝 입찰 결정
채권단은 지난달 24일 예정이었던 본입찰을 두 차례 연기했지만 SK는 줄곧 '추진'에 대한 의지를 보여왔다. 그러나 지난 8일 13시간에 걸친 SK 본사와 계열사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은 하이닉스 인수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불씨가 됐다. 자금 세탁과 계열사 자금 유용,비자금 조성 혐의 등 오너 일가를 겨냥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매시간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독일 베를린에서 주중반 귀국할 예정이었던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일정을 앞당겨 8일 오후 김포공항으로 서둘러 입국했다. 최 회장은 바로 서울 시내 한 호텔로 이동해 핵심 임원들과 검찰수사 및 하이닉스 입찰 대책을 논의했다. 이 시점부터 하이닉스 인수를 재검토한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일단 형식적으로는 본입찰에 참여한 후 실제 인수희망 가격은 채권단이 받아들이기 힘든 수준으로 낮게 써내 자연스럽게 인수전에서 빠질 것이란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소문만 무성한 가운데 최 회장은 귀국 다음날인 9일 오전 서울 서린동 본사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았다. SK 관계자는 "회장은 가는 곳이 사무실이 된다"며 "밖에서 사안별,계열사별로 보고 받고 결정할 일이 많아 바쁘게 움직였다"고 전했다. 최 회장은 이날 외부에서 계열사 임원들과 자문그룹을 돌아가며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자금 유용 관련 계열사로 지목된 SK텔레콤과 SK가스,SK C&C는 이날 공시를 통해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회삿돈 횡령 관련 보도는 사실 무근"이라고 부인했다. 본입찰 마감 하루 전인 9일 심야 그룹 수뇌부 회의에서도 하이닉스 입찰 참여는 여전히 결론이 나지 않았다. 하이닉스를 새로운 성장의 돌파구로 여기고 인수 필요성을 역설하는 측과 시너지 효과가 없어 실익이 크지 않고 자금도 부담이라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무엇보다 큰 변수는 오너를 향한 검찰의 칼끝이었다. 검찰 수사가 본격화한 가운데 하이닉스를 인수하겠다고 나서면 도덕성 시비에 불을 붙일 것이란 우려가 제기됐다. 큰 그림을 갖고 계획해온 기업 투자가 오너와 관련된 검찰 수사에 영향을 받을 필요는 없다는 의견이 엇갈렸다. 하이닉스 인수전에서 손을 떼면 검찰의 계열사 자금유용 혐의를 스스로 시인하는 꼴이 된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하이닉스 주인찾기가 또 무산될 것을 걱정하는 정부와 채권단에서는 여러 경로를 통해 검찰 수사와 하이닉스 인수는 별개라는 뜻을 전달해왔다.
그러나 밤새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본입찰 당일인 10일 오전까지도 SK텔레콤 측은 이사회가 몇시에 열릴지 뿐만 아니라 개최 여부조차 확답하지 못했다. 당초 오후 1시쯤으로 예정했던 이사회는 결국 오후 3시 이사진 간담회 이후로 미뤄졌다. 본입찰에 참여하려면 인수 희망가에 대한 이사회 승인이 필요했다. 사내 이사인 최재원 SK부회장과 하성민 사장, 김준호 코퍼레이트센터장이 사외 이사들과 협의를 거듭했다. 한 시간이 넘는 격론 끝에 오후 5시 본입찰 마감을 50여분 앞두고 입찰 참여로 가닥을 잡았다.
결론은 같지만 SK와 최태원 회장에겐 인수 참여를 선언한 지난 7월8일 이후 4개월중 가장 길었고 고민이 깊었던 마지막 3일이었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