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괴담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조선말 사회가 혼란스럽고 살기가 어려워지자 일종의 대자보인 벽서(壁書)와 괘서(掛書)가 난무했다. 왕조가 멸망한다거나 변란이 곧 닥칠 것이니 피난하라는 등 흉흉한 내용들이 주로 담겼다. 권좌에서 밀려난 양반에서부터 아전과 노비,유랑민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동참했다. 전파되는 과정에서 내용은 변형 왜곡 과장됐으나 사람들은 무작정 믿었다. 엄한 벌로 다스렸는데도 소용이 없었다. 체제에 대한 불만이 고조된 19세기 들어서는 통제불능 상태로 확산됐다.

요즘 우리사회에도 온갖 괴담이 번지고 있다. 2008년 널리 유포됐던 '촛불 시위 도중 전경이 여대생을 목 졸라 숨지게 했다'는 루머가 다시 등장하는가 하면 이명박 대통령과 에리카 김 불륜설까지 나돌고 있다. 한 · 미 FTA에 대한 괴담은 더 황당하다. 한 · 미 FTA가 체결되면 맹장수술비가 900만원으로 오르고,수돗물값이 폭등해 빗물을 받아 써야 한다는 식이다. 국민건강보험이나 전기 수도 등 공공서비스는 적용대상이 아닌데도 자꾸 퍼져가고 있다. 미 하버드대 로스쿨의 캐스 선스타인 교수는 '루머'라는 책에서 근거없는 소문이 확산되는 것을 '사회적 폭포 효과'로 설명한다. 사람들이 판단을 내릴 때 타인의 생각과 행동에 의존하기 때문에 잘 아는 사람들이 어떤 소문을 믿으면 따라 믿게 된다는 거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의견을 나누다 보면 전보다 더 극단적인 의견을 갖게 되는 경향도 있다고 한다. SNS나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퍼지는 괴담은 평소 잘 아는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것이어서 훨씬 더 신뢰하게 된다는 얘기다. 사회의 공적 영역에 대한 신뢰도가 낮을 수록 괴담은 더 활개를 친다.

뾰족한 대처방법은 없다. 그나마 사실을 밝히고 정면대응하는 것이 최선이다.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격 때 '미 군용기 1000여대가 격추됐다'는 소문에 대한 대응을 참고할 만하다.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직접 진화에 나섰다.

"진주만 공습으로 우리 군인 2340명이 목숨을 잃었고,940명이 부상당했습니다. 파괴된 군함은 3척뿐입니다. 1000대 넘는 군용기를 잃었다는 루머는 사실이 아닙니다. 일본은 우리 비행기를 얼마나 격추했는지 모릅니다. 다만 우리가 파괴한 일본 군용기 수가 훨씬 많다는 것만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소문은 가라앉았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