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창근 칼럼] 부유세의 망령

부자때리기로 경제·복지 못키워…로빈후드, 서민 더 빈곤으로 몰아

추창근 기획심의실장·논설위원
"부자들에게서 세금을 더 거둬야 한다"는 워런 버핏의 주장으로 '버핏세'라는 이름이 붙여졌지만 부유세(富裕稅)의 역사는 깊다. 세금용어로 '로빈후드세'의 하나다. 중세 영국의 의적(義賊) 로빈후드가 탐욕스런 귀족이나 성직자,상인들의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준 것처럼,금융회사나 기업,개인 등의 과다한 소득에 높은 세금을 매겨 빈곤을 구제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로빈후드 전설은 비극(悲劇)이었다.

재산을 뺏긴 권력자들은 그것을 만회하려고 서민들로부터 더 많은 세금을 걷었다. 상인들은 약탈을 피해 로빈후드가 있는 셔우드 숲을 떠나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먼길을 돌았고,많은 돈을 들여 무기와 군사들로 무장했다. 그 비용은 모두 서민들의 부담이었고 식량과 생필품 값이 치솟았다. 결국 로빈후드가 도우려 했던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만 심해졌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로빈후드 효과'다. 부유세는 매력적인 세금이다. 많이 버는 사람에게 세금을 많이 내게 해 못버는 나를 위해 쓰겠다는 조세정책을 싫어할 사람은 없다. 부자들로부터 세금을 더 걷어 가난한 사람들한테 나눠 준다는 명분도 좋다. 다들 부자가 되고 싶어하면서도 부자를 증오한다. 얄팍한 '부자에게 세금을'이라는 구호가 쉽게 먹히고,부유세 주장이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이유다.

아예 좌(左)로 가는 민노당과 민주당은 그렇다 쳐도,보수 본류라는 한나라당까지 쇄신의 이름으로 부유세 타령이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어떻게든 '부자정당'의 낙인(烙印)을 지워보겠다는 속셈이다. 하지만 부자와 서민의 이분법적 대립구도를 만들고 부자를 때려 민심을 자극하는 것은 좌파들의 전형적인 선동이다. 아무리 다급해도 그렇지 그걸 흉내내 좌파의 짝퉁을 자처하고 있는 한나라당 소장파들이다.

1910년 스웨덴에서 시작된 부유세는 한때 복지국가의 상징이었지만 스웨덴은 2008년 부유세를 없앴다. 세수가 늘기보다는 부자들의 해외 자본유출로 세금을 매겨야 할 국내 자산이 대규모로 증발되고,투자와 창업 위축에 따른 유럽 최고의 실업률 문제 때문이었다. 스웨덴에서 세금을 피해 해외로 도망간 자본이 무려 200조원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같은 이유로 핀란드도 좌파 계열의 사회민주당이 정권을 잡았던 2006년 부유세를 폐지했다. 프랑스와 노르웨이 정도가 아직 부유세를 붙들고 있지만,프랑스 최대 쇼핑체인 까르푸 재벌의 알레 가문은 '세금피난민'이 돼 벨기에로 떠났다. 프랑스를 탈출한 그런 갑부들이 수천명이다. 명배우 알랭 들롱도 그 중 하나다.

부유세로 서민복지를 구현한다거나,소득불평등과 빈부격차의 양극화를 해소하겠다는 주장은 무지의 소치 아니면 속임수다. 약자들도 불편없이 살 만한 복지사회를 만드는 건 결국 돈이다. 우선 세수기반이 튼튼해져 세금이 많이 걷혀야 한다. 부자들이 더 의욕적으로 투자해 서민들의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고,경제규모가 계속 커져야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부유세의 역사적 실험에서는 그 반대의 증거들만 나왔다. 이윤동기를 죽여 투자와 창업을 위축시키고 성장활력이 쇠퇴하면서 실업자를 양산했다. 당연한 결과다. 누가 세금 많이 내자고 더 열심히 돈 벌려고 하겠는가. 세수만 쪼그라들고 서민경제는 더 피폐해질 수밖에.세수를 늘리려면 오히려 세금을 깎아주어야 한다는 게 그동안 실증된 답이었다. 부유세의 원조 스웨덴이 지금 돈이 남아 세금을 줄이고 있다. 부유세는 예나 지금이나 어느 나라에서든 실패의 결론뿐이다. 그런데도 부유세를 주장하면서 조세정의와 형평성을 말하지만 지금도 우리나라는 상위 20% 봉급자가 근로소득세 전체의 85%를 부담하는 구조다. 정책이 서민을 위한다는 그럴 듯한 명분과 정치구호로 포장될수록 대개 시장과 거꾸로 가면서 서민들만 피해자가 되는 반대의 결과가 나타난다. 부유세의 오류가 바로 그것이다.

추창근 기획심의실장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