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종일 노동하며 6회 기도…밤엔 무조건 침묵

가톨릭 영성의 심장 (上) - 베네딕토회 聖오틸리엔수도원
독일 뮌헨에서 서쪽으로 50㎞쯤 떨어진 성오틸리엔(St.Ottilien)수도원.이곳에 사는 치릴 셰퍼 수사의 직업은 두 가지다. 신부이자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출판사 대표다. 밤에는 수도원에서 생활하고 아침이면 출판사로 출근해 오후 5시까지 일한다.

10년째 수도원 생활을 하고 있는 마우루 블로머 수사의 직업은 김나지움(학교) 교사다. 성오틸리엔수도원에 사는 100여명의 수도자는 모두 이들처럼 직업을 가지고 있다. "기도하며 일하라(Ora et Labora)"는 베네딕토 성인(480~547)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서다. 유럽의 수호성인이자 '수도생활의 아버지'로 불리는 성 베네딕토는 사막이나 동굴,산간 오지에서 혼자 은거하며 수도했던 사람들을 수도원 공동체로 불러들여 정주(定住)와 공동체라는 서방 수도원 제도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유럽 내 수도회의 70~80%는 그가 쓴 수도생활의 지침서인 《베네딕토 규칙서》를 채택했다. 성오틸리엔수도원도 그중 하나다. 베네딕토회의 전체 수도자는 9000여명.오틸리엔연합회 수도원은 21개로 1000여명의 수사들이 기도와 노동을 통해 하느님과 만나고 사랑을 실천한다.

셰퍼 수사의 안내로 수도원을 둘러보니 수도원은 하나의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수사들의 독립 공간인 봉쇄구역,순례자를 위한 '피정의 집'은 물론 소 180마리와 그보다 훨씬 많은 돼지를 키우고 있는 축사,목공소,학교도 있다. 감자와 채소도 재배한다. 셰퍼 수사는 "수사가 200명에 달했던 10년 전만 해도 마을 안에 물레방아와 바느질집이 있었다"며 "수도자가 줄면서 일반 직원을 고용해 부족한 일손을 메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도자와 평신도가 함께 일하지만 차이점이 있다. 수사들은 일하는 도중 시간을 맞춰 하루 6~7차례씩 기도를 하러 수도원 내 성당에 모인다. '시간경'이라고 부르는 기도다. 수사들의 하루는 기도와 노동의 반복이다. '새벽 5시15분 아침기도,6시15분 아침미사,12시 낮기도,오후 6시 저녁기도,오후 8시 끝기도' 순으로 반복된다. 기도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수사들은 즉각 성당으로 향한다. 블로머 수사는 "일을 하다 보면 '조금만 더 하면 완성할 수 있는데,지금 중단하면 손해인데'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런 욕심을 버리고 일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며 "기도와 일의 균형을 잘 맞춰 살아가는 것이 베네딕토회 영성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식사 시간에도 수사 한 명은 복음서를 낭독하고 두세 명이 배식을 하는 사이에 나머지 수사들이 음식을 먹는다. 1500년 전에 이미 노동의 가치를 발견했던 성 베네딕토의 혜안이 놀랍다.

오후 5시45분 저녁기도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6시가 되자 수도복으로 갈아 입은 수사들이 '예수성심(聖心)성당'에 줄지어 들어왔다. 저녁기도에는 40여명의 수사들과 일반 신자 30여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찬미가 기도'를 시작으로 성경 요한1서 3장1~2절,신자들의 기도,주님의 기도를 수사와 신자들이 함께 그레고리안 성가의 음률로 낭송했다. 수사들이 깊은 영성의 샘에서 퍼올리는 기도 소리가 1884년에 지었다는 성당의 음향 효과와 더불어 오감으로 전해온다.

30분에 걸쳐 기도를 마친 수사들은 저녁을 먹고 오후 8시에 하루를 마감하는 끝기도를 드린 뒤 다음날 새벽 5시15분 첫기도를 할 때까지 대침묵에 들어간다. 동료 수사와의 대화는 물론 혼잣말도 해서는 안 되는 시간이다.

블로머 수사는 "침묵은 입으로 말하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마음이 오락가락하지 않는 내적 침묵을 통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라며 "세상의 소리는 크고 하느님의 소리는 작아서 침묵하며 귀를 기울여야 잘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
◆ 왜관수도원 설립 등 한국과 인연 각별…김대건 신부 유해도

오틸리엔연합회는 한국과 인연이 각별하다. 1884년 설립된 오틸리엔연합회는 동아프리카 지역(현재 탄자니아)에 먼저 선교사를 파견했고 두 번째 선교 지역으로 한국을 선택,1909년 두 명의 선교사를 보냈다. 이들이 만든 수도원이 바로 성베네딕토회 왜관수도원이다.

한국의 베네딕토수도원은 서울 혜화동을 거쳐 함경도 덕원으로 이전했다가 6·25 때 엄청난 피해를 입고 월남했다. 당시 순교한 수사와 수녀만 50명이 넘는다. 성오틸리엔수도원의 예수성심성당 제단 아래에는 최초의 한국인 사제인 김대건 신부의 유해가 안치돼 있다. 제단 네 귀퉁이에는 김대건 신부와 르완다 순교자인 칼 르왕가 등 한국과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두 성인과 오틸리아 성녀,보니파치오 성인의 동상이 제단을 떠받치고 있다. 또 수도원 내 박물관에는 한국에 갔던 선교사들이 가져온 갓,도포,그림 등 수많은 유물들이 소장돼 있다. 2006년 한국으로 돌아온 겸재 정선의 화첩도 여기 있던 것을 왜관수도원이 영구임대 형식으로 찾아온 것이다.

성오틸리엔=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