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의 선율] 밝은 햇살에 막 차린 아침식탁, 커피포트ㆍ찻잔 다양한 시선

후안 그리의 '아침식사' - 바흐의 '푸가' 변주 들리는 듯

모차르트 사랑하는 프랑스 사람들, 한때 바흐의 고전주의에 열광
입체파 피카소·그리 등 화폭에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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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인은 모차르트를 좋아한다. 대형 음반 숍에 가보면 모차르트를 위해 가게를 차린 것 같은 착각이 들 만큼 매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이는 프랑스인이 독일인에 비해 훨씬 감성적이며 경쾌한 분위기를 사랑한다는 점을 말해준다.

이런 프랑스인도 한때 바흐에 열광한 적이 있었다. 19세기 말,20세기 초 파리를 중심으로 일어난 바흐 열풍이 그것.감성에 호소하는 낭만파 음악에 식상한 대중들 사이에 좀 더 규율성을 지닌 고전주의 음악에 대한 향수가 솟구쳤던 것이다. 바흐 음악의 저변을 흐르는 가장 큰 특징은 '푸가'라는 고전적 규칙성이다. 푸가는 서두에 제시한 주제가 다른 파트에서도 규칙성을 가지며 계속해서 모방,반복되는 악곡을 말하며 크게 주제 제시부,발전부,핵심 주제 재현부의 세 파트로 이뤄진다. 특히 발전부에서는 첫 파트에서 제시한 주제가 변용을 이루면서 마치 한 점의 미술 작품을 서로 다른 시점에서 바라본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바흐의 '평균율 피아노곡집'은 푸가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 바흐 열기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음악가는 물론 화가들까지 들썩거렸다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 특히 입체주의자들은 작품에 음악적 요소를 도입했는데 이는 바흐 열풍을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입체파는 20세기 초 피카소,조르주 브라크,후안 그리 등이 주도한 미술운동으로 대상을 서로 다른 시점에서 바라본 형태를 한 화면에 결합했는데 이는 동일한 테마를 변형하며 반복하는 푸가의 변주와 유사하다.

흥미로운 점은 피카소가 그다지 음악에 조예가 깊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피카소는 연주회장에 발을 들여놓은 적이 없을 만큼 평소 음악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문인 장 콕토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와는 사정이 다름을 알 수 있다. 그는 한 편지에서 피카소와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에 대해 자주 대화를 나눴다고 밝히고 있어 무턱대고 피카소가 음악에 무지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당대 대표적인 미술비평가 중 한 사람인 로저 프라이(1866~1934)가 피카소 회화를 이해하는 핵심으로 푸가를 꼽은 사실은 그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입체파 화가 중 음악적 요소를 가장 많이 도입한 이는 후안 그리(1887~1927)였다. 마드리드 미술공예학교 출신인 그는 1906년 프랑스로 건너와 피카소와 몽마르트르에서 이웃사촌으로 살게 되면서 입체주의 운동에 가담한다.

그리의 음악적 소양은 피카소와 오십보백보였을 정도로 보잘것없었다고 한다. 그의 유일한 음악활동은 부인과 춤을 추는 것이었다고 하니 말이다. 결국 입체주의자들의 회화와 음악의 결합 시도는 그들의 음악에 대한 애정이 바탕이 됐다기보다는 시대정신에 충실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리라.화면을 구성하고 색채를 선택하는 데 있어 선배인 피카소와 브라크가 즉흥적으로 접근한 데 비해 그리는 명료하고 질서있는 화면을 추구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그의 화면에는 두 선배의 화면과 달리 지적이고 분석적인 분위기가 넘쳐 흐른다. 그와 같은 특징은 1915년 작인 '아침식사'에 잘 드러나 있다.

이 그림을 보면 가장 먼저 밝고 상큼한 색채의 조합이 보는 이에게 생기를 불러일으킨다. 창 밖의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밝은 햇살이 이제 막 준비된 아침 식탁을 밝게 비추고 있다. 녹색 테이블보가 깔린 식탁 위로 오른쪽에는 커다란 수프 그릇과 물잔이,가운데에는 커피포트가,왼쪽에는 물병과 커피분쇄기가 차려져 있고 앞쪽에는 방금 배달된 조간신문이 놓여 있다. 오른쪽에는 붉은 색조의 베니어 합판을 연상케 하는 바닥재가 왼편의 녹색 식탁보와 상쾌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식탁 위의 물체들은 여러 개의 시점에서 바라본 모습을 한 데 결합한 것이다. 가운데 커피포트는 모두 네 개의 색면에 걸쳐 그려졌다. 입체적으로 그려진 가운데 부분은 정면에서 바라본 것으로 회색면으로 처리했다. 윤곽선으로만 그려진 오른쪽의 손잡이 부분은 녹색으로,왼쪽 일부는 검정색 바탕에,그리고 주둥이는 청색 위에 그려졌다. 이는 동일한 대상의 시각적 변주와 같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그림으로 듣는 푸가다. 독일의 미술사학자 베르너 호프만(1928~)이 말한 대로 입체주의자들의 출발점은 분석적이었지만 그들이 남긴 작품은 시적인 정서로 빛을 발한다. 바로 그 중심에 후안 그리가 있었다.


◆ 명화와 함께 듣는 명곡 - 에릭 사티 '3개의 짐노페디'

세기 말,세기 초 프랑스의 바흐 열풍은 단순 명료한 선율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재확인시키는 것이었다. 음악계라고 바흐 열풍의 무풍지대는 아니었는데 에릭 사티(1866~1925)는 그 선두주자였다. 그는 파리음악원 재학 시절만 해도 교수들이 넌더리를 낼 만큼 지독한 게으름뱅이였다.

사티는 젊은 시절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몽마르트르의 카바레 '검은 고양이'에서 대역 피아니스트로 일했다. 이곳에서 보헤미안 화가들과 교류하는 가운데 전통의 현대적 변용을 꿈꾸는 음악계의 전위가 된다. 그는 퓌비 드 샤반이 회화에서 이룩한 간결함의 미학을 음악에서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 바탕을 제공한 것은 바흐를 위시한 고전주의 음악이었다.

초기의 대표작인 '세 개의 짐노페디'(1888)는 고대 그리스 의식에서 젊은이들이 나체로 췄다는 춤에서 힌트를 얻어 작곡한 것으로 푸가의 영향이 짙게 풍긴다. 전곡에 걸쳐 느리고 단조로운 리듬이 지속적으로 반복되지만 전체적으로 세련미가 넘치며 명상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마치 세 개의 다른 시점에서 바라본 대상의 느낌을 한데 결합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이 작품은 입체주의 회화미학과 지극히 닮았다.
당시 프랑스 음악계의 전위에 섰던 사티의 작품이 피카소를 비롯한 입체파 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은 물론이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ㆍ미술사학박사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