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기업요청 땐 사외이사 파견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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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금에 듣는다 - (1) 전광우 국민연금 이사장
국민 돈 투자한 만큼 감시는 권리이자 의무…경영 간섭하진 않겠다
내년 10조원 신규 투입…국내 주식 비중 19.4%로
해외투자도 늘려 나갈 것
국민연금의 운용규모는 338조원(8월 말기준)이다. 올해 국가 예산(309조원)보다 많다. 세계 연기금 중에서도 네 번째로 자산이 많다. 국제 금융계가 알아주는 '큰손'이다. 국내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하나금융지주 KB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포스코 KT 등의 최대주주다.
국민연금을 이끌고 있는 전광우 이사장(62)의 철학은 확고했다. "국민의 돈인 국민연금의 수익률을 장기적으로 끌어올려 국민부담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관심을 끌고 있는 주주권 행사에 대해선,"국민의 자금을 투자한 만큼 주주권 행사는 권리이자 의무"라고 말해 주요기업에 사외이사를 파견할 방침임을 분명히 했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
"주주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은 취임 직후부터 일관되게 유지해온 소신이다. 다만 역기능은 최소화하고 순기능을 최대화하기 위해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주요 주주로 있는 기업에 사외이사를 파견할 계획인가.
"금융지주사의 2대주주들은 사외이사를 파견하고 있다.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사외이사를 파견하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 아닌가. 하지만 방향이 뚜렷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 아직도 논의하고 있다. 최대주주로서 책임을 어떻게 담당할지 고민하고 있다. "
▼사외이사를 파견하게 된다면 언제,어떤 절차를 밟게 되는지."해당 기업에서 요청할 때 사외이사를 파견할지 고민할 생각이다. 해당 기업이 사외이사 추천을 요청하면 검토하겠다는 얘기다. 당장 내년 3월 주주총회 때라도 제안이 들어오면 검토할 예정이다. 정해진 방향은 없지만 사외이사 선임을 막는 제도적 장애물이 있는 것도 아니다. "
▼사외이사를 파견할 경우 대상 기업은.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세 가지 정도의 기준을 고려할 수 있다. 국민연금 지분율이 높은 기업이 우선 대상이다. 국민의 돈이 많이 투자됐기 때문이다. 기업의 소유 및 지배구조 특징도 감안할 계획이다. 은행 등 금융지주회사는 '과점 지배체제'를 띠고 있다. 경영 투명성을 위해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공공성이 큰 산업분야도 대상이다. 주주권의 행사 방향이 공적연금의 입장에서 국가경제에도 도움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영에 간섭하지는 않을 것이다. "▼국민연금이 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면 수익성 추구를 제약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수익성 추구는 모순되는 게 아니라고 본다. 기업이 적절한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는 것은 중장기적인 수익 제고에도 도움이 된다. 국민연금은 기업의 1~2년 후를 바라보고 투자하는 것이 아니다. 장기적으로 기업의 가치를 끌어 올리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 "
▼올해 국민연금 수익률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
"8월 이후 주가가 급락해 목표했던 수익률을 달성하는 건 쉽지 않을 것 같다. 지난 2년간처럼 두자릿수 수익률을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연기금의 수익률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봤으면 좋겠다. 연금은 단순히 1~2년이 아니라 수십년간의 평균 수익률이 중요하다. 수익률 1%포인트 차이에 따라 연금 고갈 시기와 국민 부담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
▼목표 수익률은 어느 정도인가.
"연평균 6%로 돼 있다. 이를 7%로 높이면 국민연금 고갈시기가 9년 늦춰진다. 8%로 올리면 고갈을 방지할 수 있다. 중장기적으로 투자수익률을 높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다. "
▼내년 주식 편입비율을 얼마로 설정하고 있는지.
"올해는 전체 운용자산의 18%를 국내 주식에 투자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이 비중을 내년에는 19.4%까지 늘릴 계획이다. 운용자산이 올해 340조원에서 내년 397조원까지 늘어나는 점을 감안하면 내년 국내 주식 신규투자액은 7조~10조원에 이르게 된다. 운용 과정에서 목표치를 중심으로 위아래 5%포인트 정도 조절할 수 있지만 주식비중을 늘려갈 계획은 확고하다. "
▼다른 자산에 대한 투자계획은.
"국민연금의 몸집이 너무 커졌다. 자칫하면 '고래(국민연금)'가 '연못(국내 시장)'의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다. 이를 피하려면 해외투자를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 12% 수준인 해외투자 비중을 2015년까지 최소 20%로 높일 예정이다. 2015년 전체 운용자산이 500조원 이상 될 것으로 보이는데 목표에 맞추기 위해서는 매년 100억달러 이상을 해외에 투자해야 한다. 직접 투자는 물론 국내 기업과의 공동투자도 추진하고 있다. "
▼그리스 이탈리아 등 남유럽에 투자할 계획도 있는가.
"검토는 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공격적인 투자자는 아니다. 지금이 좋은 투자기회일 수 있지만 아직은 아니라고 본다. 하방 리스크를 어느 정도 제한하면서도 안정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오피스빌딩이나 인프라투자 등은 계속해 나갈 예정이다. 올 연말 출범하는 헤지펀드는 내년부터 투자에 나설 예정이다.
▼코스피가 급락할 때마다 주식 매수에 나서 '소방수'역할을 한다는 지적이 있다.
"'구원투수''총알받이'라는 표현들은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물론 장기투자자로서 시장 안정에 일정 부분 기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구원투수 역할을 하려고 주가하락 때 주식을 사는 건 아니다.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저가매수에 나서는 것뿐이다. "
▼국내외 경제환경이 불투명한데."유럽 재정위기는 단기간 내 해결될 수 없을 것으로 본다. 2008년 금융위기가 '급성질환'이었다면,이번 재정위기는 '만성질환'이다. 그런 만큼 시장 변동성도 상당 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성이다. 기업과 은행의 재무 건전성을 최대한 강화해 출렁이는 파도에 맞서야 한다. 정부 당국자와 경영진의 책임 있는 역할도 중요하다. "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