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NG KOREA] KAISTㆍNASA 탄생 뒤엔 '과학을 존중한 지도자' 있었다

과학·기술 인재 10만명 키우자
창조형 국가로 가는 길 - (1) 과학자를 춤추게 하라

세종, 관노 출신 장영실 발탁
박정희, KIST·대덕단지 등 설립
케네디, 이공계 우대정책 펼쳐
우리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통치자로 평가되는 세종대왕과 박정희 대통령.그리고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 가운데 한 명인 존 F 케네디.세 통치자의 리더십엔 꼭 빼닮은 점이 하나 있다. '과학기술이 부국의 핵심'이라는 선견지명이 있었다는 점이다. 요즘 말로 하면 '과학마인드'를 뼛속까지 깊게 간직했다.

함성득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이들 세 지도자는 비전을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과학 강국을 위한 제도적 장치와 구체적 실행 프로그램까지 직접 챙겼다"며 "과학기술자들이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풍토를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과학자를 존중하고 사랑한 지도자들

1983년 일본에서 출간된 '과학사기술사 사전'에 따르면 1400~1450년 세계 과학기술 업적 62건 가운데 조선이 29건,중국 5건,일본 0건,기타 국가가 28건으로 기록돼 있다. 15세기 당시 조선은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 강국이었다. 전상운 전 성신여대 총장(과학기술한림원 원로회원)은 "세종의 싱크탱크였던 집현전 학사 99명 가운데 21명이 과학기술자였다"며 "세종은 집현전에서 리더로서,팀원으로서,멘토로서 과학자들과 호흡했다"고 말했다. 관노 출신 장영실을 발탁한 대목은 과학에 대한 세종의 열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1965년 5월18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린든 존슨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한국의 베트남전 파병에 대한 선물로 공과대를 지어주겠다고 제안했다. 박 대통령은 공대 대신 과학기술연구소를 지어달라고 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탄생 배경이다. KIST는 박정희의 '집현전'이었다. 설립 후 3년간 한 달에 한두 번꼴로 찾았다. 연구원들과 막걸리를 마시며 애로사항을 듣는 걸 마다하지 않았다. 걸림돌은 즉석에서 걷어줬다. 밤늦게 실험하다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든 연구원에게 직접 윗도리를 벗어준 일화도 있다.

러시아가 1957년 무인 우주선 '스푸트니크'를 우주궤도에 쏘아올리고,1961년 4월엔 유리 가가린을 태운 보스토크 1호를 발사하면서 유인 우주비행에 성공하자 미국이 발칵 뒤집혔다. 이에 케네디는 1961년 5월 의회연설에서 '달 정복 프로젝트'를 제안하며 "젊은이들이 과학 수학을 공부하도록 영감을 주고 동기를 부여하겠다"고 강조했다.

케네디는 미 항공우주국(NASA)을 창설하고 연방 예산의 5%를 배정하는 등 과학기술에 정부 예산을 집중 투입했다. 정부 조직과 교육체계도 확 뜯어고쳤다. 이공계 우대정책으로 고교 졸업생의 80%가 이과에 갈 정도로 과학붐이 일어났다. ◆비전에 그친 과학입국

박정희 전 대통령 이후 우리나라 역대 통치자 모두 '과학대통령'을 표방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고등과학원 광주과학기술원 등을 세웠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두뇌한국(BK)21' 사업으로 지식정보 강국을 건설하겠다는 비전을 내걸고,과학기술처를 과학기술부로 승격시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과학기술부총리제를 도입하면서 과학기술 5대 강국 목표를 제시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초일류 과학기술 강국을 목표로 연구 · 개발(R&D) 투자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5%로 확대하고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아무도 과학자들을 춤추게 하지 못했다. 비전만 있었지 제도와 실행이 뒷받침되지 않아서다. 기초과학 분야의 국가적 과제라도 일선 행정 부처로 내려가면 예산 부족을 이유로 차일파일 미뤄지는 게 다반사였다.

황영기 차병원그룹 부회장 겸 차바이오앤디오스텍 회장은 "과학기술은 국가지도자의 관심을 먹고 자란다는 말이 있듯이 지도자들이 의지와 실천을 직접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며 "최고지도자가 과학기술을 중시하고 과학기술자를 존중하면 모두가 따라오게 된다"고 지적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