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NG KOREA] '워너비 스타' 없는 과학계…점점 멀어져 가는 노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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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인재 10만명 키우자"박세리를 보며 골프를 배운 '박세리 키즈'가 현재 세계 여자 골프계를 주름잡듯 과학자의 성공 스토리가 끊임없이 확산돼야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나올 수 있습니다. "
창조형 국가로 가는 길 - (3) 과학계 '박세리 키즈' 키우자
과학자 우대 분위기 조성…스타급 과학자 배출되면 이공계 기피현상도 줄어
기초과학 투자 확대…학교ㆍ연구소간 장벽 없애고 R&D시스템 균형도 시급
삼성전자 기술총괄 부사장을 지내며 애니콜 신화를 이끈 천경준 씨젠 회장은 "국민 1%에 해당하는 우수 과학인력이 앞장서면 과거 50년과 같은 성장 모멘텀을 다시 가질 수 있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천 회장은 "기술자들을 '사오정'(말 안 통하는 답답한 무리) 취급하는 사회 풍조에선 이공계 기피현상은 갈수록 심화될 것"이라며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과학자를 인정하고 우대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학자 성공모델 만들자
전문가들은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내기 위한 첫 번째 조건으로 우수 인재들의 지속적인 이공계 유입을 꼽는다.
지금처럼 국내 이공계 인기가 시들해진 상황에선 창의적인 사고를 가진 인재를 확보할 수 없다는 게 공통적인 의견이다. 과학기술 부문에 대한 관심을 높일 수 있는 방법으로는 과학자의 성공모델 제시가 꼽힌다. 스타급 과학자가 한 명 배출되면 그를 롤모델로 삼는 학생들이 이공계로 몰리고,그 학생들이 다시 성공한 과학자가 되는 선순환 구조의 과학 생태계다. 천 회장이 강조한 과학계의 '박세리 키즈'가 바로 이 생태계를 움직이는 주인공이다. 양윤선 메디포스트 사장은 "연구 자체를 즐길 줄 아는 창의적 괴짜들을 집중적으로 육성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조성돼야 한다"며 "잠재 성장 가능성이 높은 분야에서 업적을 쌓으면 수십년간 그 분야에 인적 · 물적 자원을 아끼지 않고 지원해줘야 노벨과학상 수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공학박사 출신의 한 벤처기업 대표는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줄세우기 풍토가 여전하고 탁월한 인재를 '왕따'시키는 분위기가 있다"며 "만연해 있는 학교 간 · 연구소 간 이기적인 운영시스템을 우선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초과학에 대한 인식 바뀌어야노벨과학상 수상을 위해선 우리 과학계의 약점으로 꼽히는 기초과학 분야의 인재 육성에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임지순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기초과학을 해도 국가에서 많은 지원을 받고 좋은 일자리도 가질 수 있다는 인식을 젊은이들에게 심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올해 기초과학 분야에 총 3조4000억원을 지원했다. 정부 전체 연구 · 개발(R&D) 예산의 33%를 차지하는 규모다. 2002년 기초과학 투자 규모가 9408억원(19% 비중)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양적으로는 3.6배 증가했다. 하지만 일본 독일 프랑스 등 기초과학 분야 선진국과 비교해선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일본 문부과학성이 운영하는 이화학연구소는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9명이나 배출한 선진 기초과학연구소다. 이 연구소에 지원된 예산은 작년 1조1200억원에 달한다. 우리 정부가 한 해 편성하는 기초과학 예산의 3분의 1이 연구소 한 곳에 집중되는 셈이다. ◆R&D 시스템 개선해야
기초과학뿐만 아니라 기술 상업화를 위한 R&D 투자,특허 등 연구성과 측면에서도 아직 선진국과 격차를 보이고 있다.
한국의 공공 및 민간 부문 R&D 투자비는 2001년 16조1000억원에서 2008년 34조4980억원으로 2배 이상 늘었다. 한국의 R&D 투자비를 1로 봤을 때 미국은 11.8배,일본 4.8배,독일은 2.7배 많다. 인구 1인당 R&D 투자비도 한국은 644달러로 미국(1221달러) 일본(1180달러) 독일(1024달러)에 크게 못 미친다. 김용근 한국산업기술진흥원장은 "국내외 젊은 과학자들을 불러모을 수 있는 균형 잡힌 R&D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며 "기초 및 응용과학,산업기술 연구가 적절히 섞이고 서로 보완 발전할 수 있도록 정부와 민간 공동의 투자,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