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 국내 첫 외국인 총학생회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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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Story - 외국인 유학생 10만명…직접 목소리 낸다서울 모대학교에서 유학 중인 마르코 푸사로 씨(25 · 남 · 이탈리아)는 지난 학기 미국문학사 수업을 듣던 도중 황당한 일을 겪었다. 영어로 진행돼야 할 수업시간에 한국인 교수가 중요한 대목에서 한국어를 사용해 알아들을 수 없었던 것.한국 학생들이 못 알아 듣는다는 이유였다. 푸사로 씨는 수업이 끝나고 교수를 찾아가 항의해 봤지만 그 이후에도 이 같은 일은 계속 되풀이됐다.
유학생 직접 투표로 회장단ㆍ단과대 대표 선출
이처럼 한국 대학에서 외국인 유학생이 겪는 갖가지 불이익을 막고 권익을 대변해줄 외국인총학생 회장을 내년에 경희대에서 뽑는다. 국내 대학에선 처음이다. 경희대 총학생회는 학내 외국인 유학생이 투표를 통해 외국인총학생회 대표를 선출하기로 했다고 22일 밝혔다. 김지혜 경희대 부총학생회장(25 · 문과대)은 "단과대 수와 맞먹는 외국인 학생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년 학생회 선거 기간에 외국인 학생 대표를 선출하기로 했다"며 "외국인 학생들이 겪는 고충을 해결할 수 있는 창구가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서울캠퍼스만 투표할지,수원캠퍼스까지 포함해서 할지는 논의 중"이라고 덧붙였다.
그동안 외국인 유학생이 10만명에 육박할 정도로 유학정책이 외형으로는 성공을 거뒀지만 각 대학 내에선 외국인 유학생들에 대한 '제노포비아(인종차별)'가 은연중 만연해 있었다.
경희대 총학생회와 외국 유학생 대표 등은 내년 선거를 통해 외국인총학생회를 구성하는 데 합의하고 외국인총학생회 세부 인원 구성 등을 차후에 논의하기로 했다. 경희대 총학생회 조직과 같이 회장과 부회장,각 국장,단대 학생회 등으로 구성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희대에서 공부하고 있는 외국인 유학생 수는 60개국 2031명(서울캠퍼스1366명)으로 국내 대학 중에서 가장 많다. 경희대 서울캠퍼스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 1만3253명의 10%를 넘어서면서 그동안 외국인 학생들을 위한 대표 기구를 설립해야 한다는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경희대는 "외국인 학생들을 위한 지원이 가장 잘 되고 있다"고 자부해왔지만 그동안 외국인학생회 사무실조차 없었다.
2004년 정부는 2012년까지 외국인 유학생을 10만명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스터디 코리아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후 2004년 1만6000여명에 불과했던 외국인 유학생은 지난 9월 말 현재 9만3232명으로 7년 만에 5배 이상 늘었다. 그러나 유학 과정을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못해 한국에 온 것을 후회하는 학생이 늘어 혐한사이트가 운영될 정도로 부작용도 만만찮았다. 또 돈벌이 수단으로 외국인 유학생을 무분별하게 뽑아 학사 관리는 뒷전인 대학도 많았던 게 사실이다.
김진형 교과부 글로벌인재협력팀장은 "학생들의 의견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기구가 없어 불이익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라며 "정보교류와 외국인 학생들의 소통 공간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허윈(賀云) 경희대 경영대학 외국인학생회 부회장(26 · 여)은 "외국인 학생의 권리를 적극 대변하고 불이익을 줄이는 학생회가 되길 기대한다"고 환영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