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억 어음에 파산說…관리종목 '추락'

'파산신청 악용' 피해 속출

채권자, 금액 관계없이 법원에 파산신청 가능
"무조건 거래정지 개선을"
상장사에 대한 파산 신청이 악용될 여지는 이전부터 있었다. 파산 신청은 비교적 간단한 반면 신청 사실만으로도 해당 기업에는 주권 매매거래 정지,관리종목 지정 등과 같은 상당한 타격을 줄 수 있어서다.

채권자는 금액과 관계없이 자신이 채권자임을 소명하고 채무자(회사)가 채권액을 변제하지 않고 있다는 내용만 있으면 법원에 파산 신청을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채권 회수 수단으로 파산 신청을 활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소액 채권자의 파산 신청 남발

올 들어 상장회사를 상대로 파산 신청을 한 채권자 상당수는 소액 채권 보유자다. 지난 10월 케이비물산은 2억원 미만의 채권 탓에 파산설에 휘말렸다. 1억9500만원어치의 케이비물산 약속어음을 보유 중인 김모씨가 "회사의 어음 지급 거절과 누적 적자 탓에 청산 필요성이 있다"며 9월29일 서울중앙지법원에 파산 신청서를 제출한 탓이다.

이후 한 달이 지난 10월25일 김씨는 파산 신청을 자진 취하했다. 파산 신청이 제기,취하되는 과정에서 케이비물산은 관리종목에 지정되고 거래가 정지됐다. 9월 한때 4000원에 육박했던 주가는 두 달여 만에 600원 선까지 주저 앉으며 80% 이상 폭락했다. 시가총액도 600억원대에서 100억원 내외로 쪼그라들었다. ◆파산설 나오면 주가 하락

파산 신청이 제기되면 상장사는 이를 곧바로 알려야 한다. 하지만 상당수 기업들은 '타의'에 의해 관련 내용을 밝힌다. 엘앤씨피 블루젬디앤씨 대한종합상사 엔하이테크 등은 올 들어 거래소의 파산 신청설에 대한 조회공시 요구가 나온 이후에나 파산 신청이 있었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스스로 파산 신청을 공시한 기업들은 채권자 측과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경우다. 8월 권모씨가 파산 신청을 제기한 엔하이테크는 상대방을 사문서 위조 및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다. "권씨가 10억원 규모의 채권이 존재한다고 주장하지만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권씨는 같은 달 25일 파산 신청을 취하했다. 3월 파산 신청이 있었던 아이디엔은 법원의 기각 결정을 이끌어낸 경우다. 법원은 김모씨가 주장한 30억원 규모의 약속어음 존재가 소명되지 않는다면서 파산 신청에 대한 기각 결정을 내렸다. ◆거래소 "거래정지는 불가피"

소액 채권으로도 상장사를 휘두를 수 있다는 사실을 거래소도 알고 있다. 하지만 파산 신청이 실제 파산에까지 이르게 되면 파장이 엄청나기 때문에 거래정지등의 조치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파산 여부를 법원이 판단하기 이전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시장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코스닥 기업들은 경영권이 바뀌는 과정에서 이전 경영진이 발행한 채권을 파악 못하는 경우가 많아 분쟁이 생길 때가 있다"며 "파산 신청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뤄질 수 있기 때문에 사안에 따라 시장 조치도 달라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