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보텀 업(Bottom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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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옥 이전 젊은 직원들에 맡기니 임직원 똘똘뭉쳐 조직 더 강해져소니코리아 부임 후 나의 방침 중 하나는 임직원들이 초청하는 회식에 꼭 참석하는 것이다. 새로운 문화를 배우고 소주,막걸리와 함께 한국 음식을 즐기는 사이에 점차 '우리' 안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회에 6명 정도의 젊은 직원들을 만나 기탄 없는 의견을 들었다. 시작은 폭탄주 한두 잔과 함께 가족,취미와 같은 가벼운 주제를 농담을 섞어가며 이야기한다. 참석자들의 마음이 조금 열린 듯하면 회사에 대한 생각,요구,불평을 들었다. 대부분 처음에는 주저하지만 열심히 듣다 보면 어느새 다양하고 흥미로운 의견들이 쏟아진다. 간혹 엉뚱한 의견도 있었지만 절대로 반론이나 설교를 늘어놓지 않았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들의 '생기 넘치는' 목소리가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각 의견은 그 자리에서 포스트잇에 하나하나 적어 보관해 회사 운영 및 사무환경 개선에 활용하고 있다. 물론,무기명이다.
이토키 기미히로 < 소니코리아 사장 itoki@sony.co.kr >
30회 넘는 미팅을 통해 전체의 70%에 이르는 직원들과 함께 식사를 했고,300개가 넘는 의견을 모았다. 연일 이어지는 회식에 피곤한 적도 있지만,포스트잇에 적힌 수많은 의견과 한층 친근해진 직원들과의 관계라는 보물을 얻었다. 직원 의견에 기반해 사옥 이전을 결정하고,자유로운 보텀 업(bottom up)의 기업 문화를 강화하고 싶어 사옥 이전에 관한 모든 권한을 젊은 직원들에게 철저히 넘겼다. 경영진이 후보지를 정한 뒤,젊은 직원들 주축으로 구성한 태스크포스팀을 중심으로 모든 일을 진행했다. 처음에는 젊은 직원 사이에서 "설마,우리한테 결정권을 줄까?"라는 의심의 목소리도 있었다. 사원이 사옥을 결정한다는 것이 어색했을 것이고,책임에 대한 부담도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결정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회사가 질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이 일이 발상을 전환하는 데 큰 계기가 됐다. 이후 부서 배치,인테리어,새로운 ID카드까지 사원들 스스로가 결정해 나갔다. 나는 겨우 이전하기 이틀 전에서야 새 사옥과 내가 사용할 방을 둘러볼 정도였다.
9개 나라에서 일했고,3개 나라에서 사장을 지냈지만 이처럼 안심하고 직원들에게 권한을 넘길 수 있었던 곳은 없었다. 새 사옥은 쾌적하고 스마트한 사무실 면모를 효율적으로 갖췄다. 무엇보다 자랑스러운 것은 임직원 모두가 함께 만들어낸 결과라는 점이다. 나는 그동안 숨어 있던 한국의 젊은 직원들의 창의력과 진취력에 감탄했다. 한국에서의 업무 처리는 효율적이고 빠른 것이 특징이다. 철저한 상의하달과 빠른 실행력이 주요인이겠다. 만약 경험 많은 임원들의 통찰력과 아직 실력 발휘 기회를 얻지 못한 청년 직원의 창의력,그리고 잠재돼 있는 중간관리자의 리더십이 더해진다면,그 힘은 얼마나 될까? 이번 사옥 이전을 통해 더욱 강한 조직을 만드는 방법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이토키 기미히로 < 소니코리아 사장 itoki@sony.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