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3분 안에 빠져들어야 진짜 연극"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연출한 日 거장 니나가와 유키오
"가볍게 오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연출가로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한국 문화를 배우고 제 연극세계에 반영하고 싶었습니다. 좋든 나쁘든 많은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

일본 연극계의 거장인 연출가 니나가와 유키오(76 · 사진)가 한국 무대에 첫 공연을 올린다. 24~27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다. 지난달 사이타마 예술극장에서 초연한 3시간20분짜리 대작이다. 로마의 정치가 안토니(안토니우스)와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의 비극적인 사랑과 양국을 둘러싼 정치적 격동을 그린다.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는 셰익스피어의 여러 요소가 들어 있는 작품입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나이 들어서 하는 사랑 같은 거죠.중년 남자와 매력적인 여왕의 얘기인 만큼 정치와 질투,성취되지 않는 사랑 등 셰익스피어의 많은 요소가 담겼어요. "

클레오파트라 역은 재일교포 3세인 가극 배우 아란 게이,안토니 역은 연기파 배우 요시다 고타로가 맡았다. 니나가와는 "일본에서 재일 한국인으로 살아온 아란이 연극에 출연한 모습을 보고 존경해왔다"며 "클레오파트라는 자기 주장이 강하고 기백과 패기가 있는 아름다운 인물이라는 점에서 아란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1969년 연출가로 데뷔한 그는 일본과 유럽을 넘나들며 셰익스피어의 대표작을 강렬한 무대 연출로 담아내 아시아 연극의 저력을 증명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9년 외국어권 연출가로는 처음으로 영국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RSC)'와 작업했고,2002년 '대영제국 커맨더 훈장(CBE)'을 받기도 했다. 그는 작품 시작 후 3분 안에 모든 메커니즘을 동원해 순식간에 극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스펙터클한 연출로 유명하다. "관객을 빠른 시간 안에 극세계로 끌어들이는 게 연출가의 의무죠.막을 올리고 3분 안에 극의 방향성 등을 보여주려 노력합니다. "

이번 작품에서도 순백의 갤러리를 연상시키는 무대에 로마 신화 속 로물루스와 레무스상,이집트의 스핑크스 조형물 등을 배치한다.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왕성하게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자신을 '스스로 헤엄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물고기'에 비유하며 "세계에 대한 감각,인간에 대한 느낌을 한 작품으로 표현하기 어려워 다양한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괴롭거나 슬픈 연극에서라도 관객들이 삶의 희망을 품고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작은 것이라도 좋으니까요. 그런 생각으로 연극을 만들고 있습니다. "공연 문의 (02)2005-0114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