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레 예멘 대통령 권력이양안 사인

[0730]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이 국내외의 사퇴 압박에 굴복, 33년간 장기 독점한 권좌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지난 1월 살레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발발한 지 10개월 만이다.

살레 대통령은 23일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 국왕과 나이프 왕세제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의 퇴진을 규정한 권력 이양안에 서명했다고 아랍권 위성채널 알자지라가 전했다. 예멘 야권 대표들은 살레 대통령 다음으로 권력 이양안에 서명했다.걸프협력이사회(GCC)의 중재안을 토대로 예멘 여·야가 합의한 이번 권력 이양안에 따라 살레 대통령은 모든 권한을 압둘 라부 만수르 하디 부통령에게 넘겨야 한다. 하디 부통령은 야당 중심의 국민통합정부를 구성해 90일 안에 대선을 치르고 새 대통령을 선출하게 된다. 다만 살레 대통령은 차기 대선 이전까지 명목상의 대통령직은 유지하게 된다.

지난 10일부터 예멘을 방문한 자말 빈 오마르 유엔 사무총장 특사는 미국과 유럽 외교관들의 지원 아래 집권당과 야당을 중재해 전날 합의를 이끌어냈다. 최종 합의된 권력이양안은 시위대가 반대하는 살레 대통령의 면책특권을 보장한 것으로 알려져 당분간 논란을 부를 전망이다.

실제 살레 대통령의 권력이양안 서명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이날도 예멘 수도 사나에서는 살레의 형사 처벌을 촉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예멘에서는 지난 1월 반정부 시위가 발생한 이래 최근까지 정부군의 강경 진압으로 1500명 이상이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살레 대통령은 그동안 시위를 유혈 진압하는 동시에 GCC 중재안 서명 약속을 3차례나 번복했다.한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살레 대통령이 권력이양안에 서명한 뒤 미국 뉴욕을 방문해 신병 치료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 총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살레 대통령이 전화를 걸어와 이런 내용을 설명했다고 전했다.

살레 대통령은 1969년 권력을 잡은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 원수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장기 집권한 권력자다. 그는 초등학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해 일찌감치 군에 입대했으나 군 내부에서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했다. 군부를 등에 업고 1978년 쿠데타로 북예멘 정권을 장악했다.

북예멘은 이후 살레의 강력한 통치력을 바탕으로 안정화의 길로 들어섰지만 예멘사회당이 지배한 남부 예멘은 내부 권력 다툼으로 내전에 휩싸이는 등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1990년 5월 북예멘이 남예멘을 흡수하는 방식으로 통일이 이뤄졌고 살레 대통령은 자연스럽게 통일 예멘의 첫 국가수반이 됐다. 그러나 통일 후 살레가 이끄는 국민의회당은 남예멘에 기반을 둔 예멘사회당을 탄압해 남부 지역 주민들의 분리독립 운동을 촉발했고, 이는 1994년 전면 내전으로 비화했다. 우세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살레의 북예멘은 결국 2개월에 걸친 내전에서 완승을 거뒀고 위기를 수습한 살레 대통령은 이후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게 됐다.

살레 대통령이 33년간 장기 집권하면서 거둔 성적표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인구 2300만명 중 절반 가량이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연명하고 있다. 남·북예멘을 통일 이전으로 환원해야 한다는 분리 운동은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