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代를 잇는 家嶪…2세가 뛴다] "부친이 만든 공구 유통망 세계에 깔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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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동신툴피아공구 유통업체인 동신툴피아의 김종현 이사(36)는 2009년 겨울 혼자 일본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단순한 관광목적의 여행이 아니었다. 새로운 거래처를 직접 뚫기 위해 비즈니스 여행에 나섰던 것.
'45년 외길' 아버지…'고객 이익' 최우선 일념으로 1000억대 국내 1위 이끌어
'제2의 도약' 아들…해외 돌며 우수기업 발굴, 7년간 50여개 거래선 뚫어
당시 그는 수소문 끝에 공구제조에 경쟁력있는 15개 기업을 방문했다. 일일이 기업들의 생산현장을 방문해 제조과정을 보고 최고경영자(CEO)를 면담했다. 이런 식으로 지난 7년간 해외업체 50여개 기업과 거래를 텄다. 물론 매번 혼자한 것은 아니다. 무역팀과 영업직원들이 함께했다. 김 이사는 "아버님이 국내 유통망을 만들어 놓으셨으니 저는 거기에 해외 유통망을 얹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일찍부터 대학 전공도 국제통상학부(계명대)를 선택했다. 재학 중엔 외국어 공부에 집중,졸업할 땐 영어와 일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게 됐다. 졸업 후엔 미국 인디애나폴리스대 연수를 거쳐 미국의 유명 공구업체에 취직했다. 선진 경영을 배우기 위해서다.
동신툴피아에 입사한 건 2004년.해외무역과 기획,영업분야를 담당하고 있다. 매출(올해 1000억원 예상)의 20% 정도가 김 이사 몫이다. 김 이사는 "역시 중국을 빼놓고는 사업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요즘엔 틈틈이 중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영업을 위해 현지에서 직원을 채용해 온 것도 그의 아이디어다.
창업자인 김동연 회장(61)은 김 이사의 그런 모습에 대해 "여간 대견스럽지 않다"고 말했다. 특히 "해외사업 쪽은 알아서 잘해주니 믿고 맡길 만하다"며 "아들이 입사하면서 회사가 제2의 도약기를 맞고 있다"고 흐뭇해했다. 김 회장이 처음 공구업계에 발을 들인 것은 16세 때.전남 나주에서 야간 중학교를 졸업한 후 상경한 그는 서대문 로터리 부근 '삼화정밀'이란 철공소에서 선반으로 쇠를 깎고 밀링으로 구멍뚫는 일을 배웠다. 그곳에서 2년간 기름밥을 먹다 1968년 사촌 형 두 명이 세운상가에 공구유통업체인 '동화기공'을 설립하자 그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엔 취급할 이렇다 할 공구가 마땅치 않았다. 주로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공구를 닦고 기름칠해서 팔았다. 국산은 마라톤표 바이트와 코끼리표 몽키스패너 플라이어,순풍공업사의 탭과 다이스 등을 취급했다.
그는 가게에서 곧 두각을 나타냈다. 공구를 이용해 기계가공을 해 본 경험을 바탕으로 손님들에게 해당 작업에 가장 적합한 공구를 추천해줬다. 한번 거래한 손님은 바로 단골이 됐다. 그는 1984년 동화기공을 인수했다.
김 회장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고객의 이익'이었다. 이를 위해 '최상의 품질,최상의 가격,신속한 납기'를 지키라고 직원들에게 거듭 강조했다. 물론 어려운 때도 있었다. 외환위기때 매출이 급격하게 줄었다. 김 회장은 "어렵긴 했지만 어지러웠던 유통시장이 자연스럽게 정돈되면서 오히려 도약의 계기가 됐다"고 회고했다. 그는 신용과 고객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경영으로 거래처로부터 신용을 얻어나갔다. 김 회장은 업계의 신망을 기반으로 1999년 전국 3000여개 공구유통업체들의 단체인 사단법인 산업용재공구상협회 회장(임기 2년)을 맡았다. 2003년엔 한국경제신문사가 주는 '올해의 중소기업인상'을,2004년엔 '모범중소기업인상 부문 산업자원부장관상'을,지난해엔 공정거래 부문 대통령 표창을 각각 수상했다.
김 회장은 "어떤 사람들은 불황이다,경기침체라면서 어렵다고 하지만 아직 우리 회사가 전 세계 공구 유통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2%도 안되는 미미한 수준"이라며 "지난 45년 동안 달려온 길보다 더 먼 앞길이 남았으니 아들과 손잡고 힘 닿는 데까지 뛰어보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박수진 기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