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 길어진다"…中, 해외투자 자제령

유럽위기 급속 확산…리먼사태 때보다 심각
中마저 돈줄 죄면 세계경제 더 깊은 '늪'으로
중국 정부가 미국과 유럽 재정위기에 대응,기업들의 공격적인 해외 투자를 자제토록 하는 긴급 조치를 취했다. "세계경제 침체가 장기화될 것"(왕치산(王岐山) 부총리)이란 전망에 따라 '쩌우추취(走出去 · 기업의 해외 진출)' 전략을 전면 수정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대외투자를 급격히 줄일 경우 침체된 글로벌 경제에 또 다른 위협요소가 될 전망이다.

◆불확실성에 '도전'말라24일 신화통신에 따르면 국무원 산하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국자위)는 국유기업들에 내년 해외 투자를 신중하게 결정하라고 지시했다. 정치 변동 등 미래에 발생할 위험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고 투자를 집행하라는 것이다. 국자위는 또 기업들이 위험평가 시스템을 구축해 위급 사태가 발생했을 경우 손실을 최소화하는 한편 중대한 해외 투자 결정 등에 대한 추진체계와 평가제도도 갖춰야 한다고 권고했다.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중국 기업이 투자해 설립한 해외 기업은 1만5000개를 넘어섰다. 해외 직접투자 누계액도 지난해 말 3172억달러에 달하며 이 중 절반 이상을 국유기업이 차지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해외 시장 확보 등을 위해 기업들의 대외투자를 적극 독려해왔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로 68개 국유기업이 해외 투자 부문에서 114억달러의 손실을 내는 등 큰 피해를 봤다. 또 올해 리비아 내전으로 수백억달러의 투자자산을 잃을 상황에 처해 있고 지난 8월에는 페트로차이나가 추진해온 아프리카 국가의 해외 사업 6건이 중단돼 12억위안(21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중국 내에서는 국유기업들의 방만한 해외 투자를 금지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고 신경보가 전했다. 중동과 아프리카의 정치 불안 등으로 손실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럽 재정위기가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발전될지 모르는데 무모한 투자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

◆중국 안팎의 경기 악화중국이 국유기업의 해외 투자에 제동을 건 것은 내년 세계경제 상황이 예상보다 심각하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 왕 부총리는 최근 "지금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세계경제 침체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위안강밍(袁鋼明) 칭화대 중국과세계경제연구센터 연구원도 "2008년에 많은 중국 기업들이 예기치 않게 터진 금융위기로 엄청난 손실을 냈다"며 "최근의 위기는 2008년 금융위기 상황에 못지않으며 단기간에 끝나지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불안한 국내 경제 상황도 해외 투자 신중론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수출 중심지인 광둥성의 선전시와 둥관시에서는 지난 한 주 동안 근로자 1만명 이상이 집단 시위와 파업을 벌였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수출과 제조업을 중심으로 성장률이 둔화되고 있어 중국 근로자들의 시위 · 파업 확산이 우려된다고 전했다. 광둥성은 지난 10월 지역 수출이 전월 대비 9%나 급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글로벌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정부는 한때 유럽 재정위기를 지원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국유기업의 유럽 기업 인수 등을 적극 추진하는 계획을 검토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히려 국자위는 해외 국유자산의 손실에 대한 책임 규정을 명확히 하는 등 해외 진출을 억누르는 조치들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베이징=김태완 특파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