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에 첫 입성한 발레 한류…유니버설 '심청', 오만 달궜다

로열오페라하우스 무대 성황
토슈즈 신은 심청이가 사막에 발레 바람을 일으켰다. 28일(현지시간) 저녁 아라비아 반도 남동쪽 오만의 수도 무스카트의 로열오페라하우스. 이집트 카이로 오페라하우스와 시리아 다마스쿠스 오페라하우스에 이어 중동에서 세 번째로 지어진 이 극장에 한국 유니버설발레단(단장 문훈숙)의 ‘심청’이 막을 올렸다. 한국 창작 발레로는 최초의 중동 입성이다.

‘발레라는 장르조차 낯선 중동에서 한국 창작품을 보러 올 사람이 있을까’라는 걱정은 기우였다. 1055석 전석 매진, 전원 기립박수. 취소된 표를 사려는 대기자 명단만 200명이 넘었다. 화려한 터번과 히잡을 두른 오만 사람들과 문화생활에 굶주린 오만 내 유럽인들로 극장은 북새통을 이뤘다.아버지의 먼 눈을 뜨게 하려는 심청(황혜민)은 안정적이고 노련한 연기와 깃털처럼 가벼운 동작으로 3막 내내 관객들을 빨아들였다. 1막에서 심청이 바다에 몸을 던지는 장면과 남성들의 군무, 성난 바다를 표현한 무대 기술은 단연 돋보였다. 선장 역의 이현준은 특유의 카리스마로 힘이 넘치는 무대를 선보였다.

객석 반응은 3막에서 가장 뜨겁게 달아올랐다.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온 황혜민·엄재용(왕) 커플의 ‘달빛 2인무’에 탈춤과 국악 장단을 접목한 궁중 연회 장면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왕비가 된 심청이 아버지와 서로의 얼굴을 더듬으며 상봉하는 장면에서는 눈물을 훔치는 관객도 여러 명 보였다. 궁궐 세트, 한복 등 기존 발레에서 볼 수 없었던 요소들이 등장할 때마다 객석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공연을 본 술라이만 빈 하메드 알 하티 무스카트은행 이사는 “아름답다. 주인공이 꼭 새처럼 날아다니는 것 같다. 한국의 다른 공연들도 빨리 보고 싶다”고 말했다. 신딥 세갈 오만연합미디어 대표는 “한국인 동료에게 대강의 스토리를 전해 듣고 왔는데, 아버지를 생각하는 소녀의 마음이 감동적이다. 전통 의상이 특히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소재의 한계는 감출 수 없었다. 사전 해설과 자막을 금지한 극장 측 규제로 공양미 300석에 몸을 팔고 인당수에 뛰어드는 장면에 대한 관객의 이해도가 떨어졌다. 술탄카부스대에 다니는 마하 알파르시는 “유명한 발레 작품은 유튜브로 많이 봐왔는데 오늘 본 심청은 완전히 다른 아름다움”이라면서도 “익숙한 소재가 아니어서 짧게나마 장면에 대한 해설을 미리 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유니버설발레단이 플라시도 도밍고,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 첼리스트 요요마와 런던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아메리칸 발레시어터, 안드레아 보첼리 등과 어깨를 나란히할 수 있었던 비결은 두 가지. 브렛 이간 오만 로열오페라하우스 대표는 “영상으로 만난 심청은 동작과 무대 세트, 의상까지 예술적으로 정말 아름다웠다. 다른 해외 공연에서 호평을 많이 받았던 것에 믿음이 컸다”고 말했다.

노출이 적은 한복을 입는 의상 컨셉트와 ‘효(孝)’를 강조하는 주제도 한몫했다. 보수적이고 가족중심적인 문화를 지닌 이슬람 국가에서 ‘심청’만한 발레 작품은 없었다. 무스카트=김보라 기자destinybr@hankyung.com


내년엔 러시아 · 남아공 · 스페인에서 공연

올해 창단 27주년을 맞은 유니버설발레단은 25년 전 초연한 롱런작 ‘심청’으로 오는 2013년까지 월드 투어 중이다. 대만 싱가포르 미국 캐나다를 거친 올해 여정은 오만 무스카트에서 마침표를 찍었다.

내년에는 러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랑스 스페인 공연도 예정돼 있다. 공연을 마친 문훈숙 단장은 “낯선 중동 지역인 데다 세계 유명 발레단이 고전 레퍼토리를 선보이는 가운데 창작 발레를 올린다는 게 부담스러웠지만 티켓 매진 소식에 뛸듯이 기뻤다”며 “유니버설발레단이 17개국 1500여회의 공연을 해왔지만 세계적인 예술단체와 동등하게 초청받은 첫 중동 공연이라 더욱 의미가 깊다”고 얘기했다. 유니버설발레단은 이날 공연 직후 내년 개관 1주년 기념 갈라 공연에도 초청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