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봇대'는 살아있다] 무늬만 규제개혁委…금융ㆍ노동ㆍ세금분야는 손도 못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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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규제개혁 '속 빈 강정'규제개혁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 때 제시한 국정 최우선 과제의 하나였다. 하지만 기업들이 체감할 수 있을 만큼 끈기 있게 규제개혁을 추진할 시스템을 만드는 데 실패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기업 불편 호소해도…"남의 일" 관할부처는 떠넘기기 일쑤
조직 통폐합하고 권한 강화를
규제개혁 업무가 규제개혁위원회,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법제처 등으로 분산돼 책임 소재가 모호하게 돼 밑바닥의 숨은 규제 발굴 및 해소가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힘 없고 눈치보는 규개위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설치한 규제개혁위원회는 명칭만 보면 모든 규제를 다 없앨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세금은 기업인들이 가장 큰 부담으로 느끼는 문제지만 전혀 건드릴 수 없다. 세율이나 세목을 정하는 것은 당연히 기획재정부나 국세청의 몫이지만, 세금을 부과하거나 징수하는 과정에서의 불합리한 내용이 있어도 관여할 수 없게 돼 있다.
노동 관련 규제들도 성역으로 통한다. 원칙적으론 가능하지만 노동조합 등의 반발이 무서워 엄두도 못내는 실정이다. 토지허가 문제도 마찬가지다. 규개위가 규제완화안을 만들어도 정치적 논리 때문에 국회에서 가로막히는 경우도 허다하다. 제주도에 민간 의료기관 설치, 원격 의료서비스 제공 등 주요 규제개혁 과제들은 국회에서 2~3년째 잠자고 있다. 규개위 관계자는 “기업인들이 가장 불편을 느끼는 규제가 금융, 노동, 세금 관련 분야인데 어느 것도 손 댈 수 없게 돼 있다”며 “차·포 떼고 장기 두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소관 아니다’ 만연하는 면피주의
현실이 이렇다 보니 현장에 있는 기업인들이 불편을 호소해도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 규개위는 권한이 없고 다른 부처들은 규개위 문제라고 떠넘기기 일쑤다. 기업인들은 이 때문에 “해당 부처에 민원을 제기하면 규제개혁은 규개위 책임이라고 곧잘 떠넘기고 지방자치단체에 얘기하면 자주 상위법 핑계를 댄다”고 불평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문제 제기를 할 수 있지만 권익위 활동 자체가 경제보다는 사회분야에 초점이 맞춰져 이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은 제한돼 있다.
정부 관계자는 “언론에서 아무리 규제개혁의 필요성을 외쳐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적 문제 때문에 해결이 안된다”고 털어놨다. ◆“규개위와 국경위 통합해야”
박형준 성균관대 교수(행정학)는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나 규개위는 재정부나 지식경제부 등 힘 있는 부처를 통제하기가 어렵다”며 “규제개혁 부처에 실권을 주고 규개위와 국경위를 합치는 방안도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국 배재대 교수(국제학부)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각종 가격규제를 만드는데도 규개위가 전혀 제어하지 못하는 것은 큰 문제”라고 말했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