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 매니지먼트] 캡슐 몇 통 사면 커피머신 값…배보다 '배꼽'으로 돈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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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 초기비용으로 유혹‘커피 한 잔과 담배 한 개비, 그리고 양치질.’
한 번 사면 잘 안 바꾸는 심리
닌텐도 위·전동칫솔·프린터 등 본체보다 소모품으로 이익 내
셋의 공통점은 뭘까. 평범한 30~40대 남성 샐러리맨의 점심 시간 스케줄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점심 식사 후 커피를 마시거나 흡연을 한 다음 이를 닦게 마련이어서다. 이런 보편적인 샐러리맨의 식후 동선에서 비즈니스 기회를 발견한 기업들이 적지 않다. 더욱이 이들 기업은 비슷한 전략으로 성공을 일궜다. 비결은 ‘영구재는 싸게, 소모품은 제 값’에 파는 데 있다. 배보다 배꼽을 키우는, 이른바 ‘배꼽 마케팅’으로 시장을 장악했다.
◆네스프레소 커피머신 초저가 전략
네슬레는 1986년 자회사 네스프레소를 통해 커피머신 사업에 뛰어들었다. 동전 자판기 커피족 대신 고급 아메리카노 커피 마니아들을 노렸다. 집에서도 폼나게 커피를 마시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는 만큼 가정용 커피머신 시장이 커질 것으로 봤다.뿐만 아니라 직원 복지 차원에서 그럴 듯한 커피메이커를 휴게실에 들여놓으려는 사장님들을 고려할 때 기업(B2B) 시장도 상당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문제는 커피머신의 가격. 고급 커피 맛을 제대로 내려면 기계 값만 수백만원을 받아야 했다. 네슬레는 고민 끝에 커피머신에선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이를 감수하기로 하고 10만~20만원의 초저가를 채택했다.
대신 커피 원두를 하나씩 진공 포장한 커피 캡슐 가격에는 마진을 제대로 붙였다. 동시에 “커피 맛은 캡슐에 달렸다”며 캡슐 마케팅을 강화했다. 보통 원두는 개봉 2주가 지나면 맛이 변하지만, 캡슐 커피는 장기간 신선도가 유지된다는 점을 적극 홍보했다. 커피머신 세척용 캡슐도 개발해 기계를 청소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덜어줬다.결과는 대박이었다. 회사 매출에서 캡슐 커피가 차지하는 비중이 30%로 급증했다. 한국에서도 캡슐 커피 점유율 1위에 오르며 성공 신화를 이어갔다.
네슬레가 승승장구하자 밀레와 필립스 등 다른 해외 기업들도 국내에서 캡슐커피 머신을 내놓았다. ‘커피믹스’로 국내 인스턴트 커피 시장에 안주하던 동서식품도 캡슐커피에 눈뜨기 시작했다. ◆전동칫솔과 전자담배도 배꼽 마케팅
사람들이 한 번 쓰고 버리는 소모품에서 대박을 친 원조는 미국 질레트다. 면도날을 숫돌에 갈아 반영구적으로 쓰던 1900년대 초 금속조각으로 면도날을 개발, 주기적으로 면도날을 갈아 끼우게 만들었다.그러면서 껌이나 커피에 면도기를 끼워주는 마케팅을 시작했다. 공짜 마케팅으로 질레트 면도기를 보급한 뒤 면도날을 제 값에 주고 파는 ‘배꼽 마케팅’으로 재미를 봤다.
질레트는 이 전략을 전동칫솔로까지 이어갔다. 전동칫솔은 원래 장애인이나 노약자 등 손에 힘을 제대로 줄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제품이었다. 힘 들이지 않고 이를 닦고 싶어하는 일반인들도 많다고 보고 전동칫솔에 배꼽 마케팅을 적용했다.
그렇게 탄생한 제품이 브라운 전동칫솔이다. 질레트는 10만원 이하 가격으로 브라운 전동칫솔을 팔고 칫솔모를 개당 1만원 이상씩 받아 이윤을 챙겼다. 나중에 오랄비를 인수하며 칫솔모 고급화도 꾀했다.
데캉 같은 전자담배 회사들도 소모품으로 재미를 보고 있다. 전자담배 기기는 노마진 수준인 7만원 정도에 보급하고 주기적으로 교체해야 하는 카트리지 가격은 10개에 3만원 정도로 높이 책정했다. 담배맛을 결정하는 액상도 일반 담배 가격의 2배 이상으로 했다.
정보기술(IT)업계에서 배꼽 마케팅은 이미 교과서가 됐다. 한 때 닌텐도가 ‘위(Wii)’ 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도 게임기를 싸게 판 게 주효한 덕분이다. 그러면서 게임팩에선 제 값을 받았다. 삼성전자, 휴렛팩커드(HP) 등도 ‘프린터에서 손해보더라도 카트리지에서 만회한다’는 전략을 쓰고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가격이 뒤바뀐 폴라로이드 사진기와 필름에서 비슷한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소비자 위해 진입장벽 낮춰라”
배꼽 마케팅이 대세가 된 이유가 뭘까. 뭐니뭐니해도 소비자들에게 초기 가격 부담을 덜어준 게 통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처음부터 커피머신이나 게임기를 사는 데 수백만원을 쓰는 데 인색한 심리를 파고 들었다.
기업이 이익을 양보하거나 소비자 대신 비용을 지불한 건 그래도 남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시작이 반’이라서 소비자들이 자사 제품에 첫 발만 들여놓으면 경쟁사 제품으로 이동하기 쉽지 않다는 게 만고의 진리다.
경제학이나 경영학에선 이를 ‘경로 의존성’이라 부른다. 이 개념을 정립한 스탠퍼드대의 폴 데이비드 교수와 브라이언 아서 교수는 “한 번 일정한 경로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나중에 그 경로가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를 마케팅 분야에 접목하면 시장 선점의 중요성으로 귀결된다. 처음에는 손해보는 듯해도 ‘마지막에 웃는 자가 승리한다’는 사실을 많은 기업들이 보여주고 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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