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성장이 미래다] 삼성, 협력사 50곳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 자금·기술 전폭 지원

"대·중기는 부부와 같다…힘 합쳐야 제 기능 발휘"
기술 공동개발·특허 공유, 대금 지급 월 3회로 늘려
글로벌 10대社 도약 위한 6대 전략과제에 상생경영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1990년대 초반부터 임직원들에게 ‘하청업체’란 말 대신 ‘협력사’란 용어를 쓰도록 했다. 삼성과 거래기업이 갑을 관계가 아닌 진정한 동반자 관계임을 주지시키기 위해서였다. 이 회장은 동시에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부부와 같다”며 “어느 한쪽도 혼자서는 불완전하며 힘을 합쳐야 제대로 기능을 발휘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의 이런 지론 덕에 삼성은 오래전부터 어느 기업보다 동반성장에 적극적이었다. 그러다 삼성은 올해 또다시 동반성장 실천에 새로운 도약을 모색했다. 이 회장의 말대로 협력사가 다양화되고 있는 데다 2·3차로 분화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다.

◆협력사에 대규모 지원우선 협력사에 쏟아붓는 자금 규모를 키웠다. 올 4월 삼성그룹 9개 계열사는 1·2차 협력사 5000여곳과의 동반성장을 위해 6100억원가량의 자금을 지원하는 협약을 공정거래위원회와 맺었다. 구체적으로 동반성장펀드를 조성하고 협력사에 자금을 직접 지원하는 방식을 택했다.

대금 지급 조건도 개선했다. 협력사의 납품대금 현금 결제 비율을 100%로 유지하는 한편 하도급대금 지급 주기를 종전 월 2회에서 월 3회로 조정했다. 협력사들의 자금흐름을 원활히 해주기 위해서다. 협력사와 공동으로 기술개발을 하고 임직원 교육·훈련을 할 수 있는 지원책도 마련했다.

특허권을 협력사에 제공하거나 특허 공동출원, 기술이전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각 계열사 구매담당 임원을 평가할 때 동반성장 실적을 반영하는 방안도 마련했다.자금뿐 아니라 판로도 지원했다. 삼성전자는 협력사들과 해외판로를 여는 데 후원하겠다는 협약도 체결한 것이다.

삼성 계열사들은 추석 같은 명절을 앞두고 거래 협력사의 자금난 완화를 위해 물품대금을 당초 지급일보다 1주일 정도 앞당겨 지급하기로 했다. 올해 추석 조기 지급한 액수만 1조4000억원이었다. 삼성전자를 비롯 삼성SDI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 등이 동참했다.

◆협력사를 글로벌 기업으로 육성삼성전자는 2015년까지 협력사 50곳을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키우는 동반성장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다. 지난 8월 28개 협력사를 후보기업으로 선정, 기술·자금을 전폭 지원하고 있다. 1000여곳이 넘는 삼성전자 협력사 가운데 기술력을 갖춘 중소기업을 해당 분야 글로벌 ‘톱5’ 안에 들 수 있도록 후원한다.

삼성전자는 각 후보기업이 필요로 하는 연구·개발(R&D) 자금과 운전·투자 자금, 공급망관리체계(SCM) 등 경영인프라 구축 비용을 내준다. 또 삼성전자 개발·제조 엔지니어를 파견해 기술개발 과정에서 협업을 강화하는 한편, 장비를 만드는 협력사에는 특허기술도 공유할 수 있게 모든 지원을 할 계획이다. 후보기업으로 선정된 곳은 대부분 삼성전자와 오랜 협력관계를 맺어온 기업으로 각 분야에서 국내 1,2위를 다투는 곳들이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강소기업 프로젝트가 일회성 지원에 그치지 않게 하기 위해 지속적인 경쟁력 평가·관리 시스템도 만들기로 했다. 매년 후보기업들의 경쟁력을 평가해 해당 분야 글로벌 ‘톱5’에 드는 기업에는 강소기업 인증을 부여할 계획이다.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곳은 중도 탈락시킬 방침이다. 내년 이후 매년 국내 주요 중소기업을 평가해 후보기업을 추가 발굴하기로 했다. ◆부품 국산화로 수입 대체

삼성전기는 협력사들과 힘을 합쳐 상당수의 전기 전자 부품을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런 성과의 중심에는 박종우 삼성전기 사장이 있었다. 박 사장은 “일본산 일색인 정보기술(IT) 부품을 국산화하려면 협력사와의 동반성장이 필수”라며 지난 3월 말 국내 협력사들과 공동으로 ‘부품 국산화 전시회’를 열도록 했다. 행사에 참석한 박 사장은 반도체용 기판을 자르는 기기를 만드는 네온테크라는 회사의 잠재력을 보고 현장에서 공동개발을 제안했다.

양사 임직원들은 곧바로 협력 태스크포스(TF)를 꾸려 6개월간 연구에 매달린 끝에 반도체용 기판 절단기 국산화에 성공했다. 네온테크와 삼성전기 거래금액은 작년 4억원에서 24억원으로 늘었고 내년엔 51억원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박 사장은 “협력사의 기술력이 삼성전기의 경쟁력이 되고 나아가 국가 경쟁력이 된다”며 협력사와의 동반성장을 직접 챙겼다. 그 덕에 박 사장이 취임한 2009년 이후 부품 국산화를 통해 삼성전기와 협력사의 거래금액은 2400억원 이상 증가했고 700억원의 수입 대체 효과를 거뒀다. 박 사장은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달 23일 지식경제부로 주최로 열린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대상 시상식에서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