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디안과 토종 바리톤의 서울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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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페 알토마레·강형규 씨, 2~4일 오페라 '리골레토' 열연“마흔 살을 넘기면서 수없이 했던 리골레토 역이 다르게 다가왔죠. 조롱받는 광대,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 복수에 눈먼 남자까지 한 무대에서 보여줘야 하는 다중적인 캐릭터라 인생의 경험을 다 녹여내야 해요. 왜 리골레토가 관객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베르디의 오페라가 됐는지 알 것 같아요.”(바리톤 주세페 알토마레)
“마지막 리골레토 역은 2006년 이탈리아 돈 카를로 극장에서였어요. 2007년 딸이 태어났고, 아빠가 된 이후 이 역을 하려니까 감정이 복받치더라고요. 13년 만의 귀국 후 첫 국내 오페라 무대라 더 떨리기도 하고요.”(바리톤 강형규)베르디 작품에만 전념하고 있다는 17년 연륜의 ‘베르디안 바리톤’ 주세페 알토마레와 유럽 무대에서 지난 10년간 활약해온 ‘토종 바리톤’ 강형규 경희대 성악과 교수가 맞붙는다. 수지오페라단이 2~4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올리는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에서다.
서울 남산창작센터 연습실에서 만난 알토마레는 “세분화된 캐릭터 표현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고, 강 교수는 “고음 잘 내는 바리톤의 명성에 맞게 1막 2장에서 질다와의 이중창을 화려하게 부를 것”이라고 했다.
‘리골레토’는 주세페 베르디가 작곡한 3막의 오페라로 빅토르 위고의 희곡《일락의 왕》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방탕했던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 이야기여서 검열을 통과하지 못하고 상연 금지당했던 작품. 이 작품은 베르디 스스로 “내가 지금까지 음악으로 만들어낸 소재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이라고 평했다. 16세기 북이탈리아의 궁정을 배경으로 여성을 정복하며 삶의 보람을 느끼는 방탕아 만토바 공작이 등장한다. 등이 굽은 광대 리골레토가 아름다운 첩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듣고 그녀를 유괴해 오도록 명하는데, 이 여자는 리골레토가 공작의 눈에 띄지 않게 숨기고 있던 딸 질다였다. 질다는 학생으로 변장한 공작을 공작인 줄 모르고 사랑하게 되고, 그에게 순결을 빼앗긴다. 이 사실을 안 리골레토는 복수를 맹세하고 자객인 스파라푸칠레에게 공작의 암살을 부탁한다. 2005년에도 리골레토 역으로 한국을 찾았던 알토마레는 “대구 공연이 끝나고 잘 걷지도 못하는 할머니께서 손녀의 부축을 받으며 무대 가까이 오더니 내 손을 잡고 펑펑 울었다. 그보다 더 큰 칭찬은 없었다”고 말했다.
둘의 연습 장면을 지켜보던 연출가 휴잇은 “최대한 원작에 충실한 오페라를 만들 것”이라며 “유럽에선 지난 30년간 고전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변형된 오페라를 선보여 왔지만 지금은 원작으로 다시 돌아가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리골레토’는 또 만토바 공작의 저택에서 벌어지는 난잡하고 퇴폐적인 파티를 원작 그대로 재현한다.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파격적인 누드 장면도 시도한다. 몬테로네의 딸이 만토바 공작 일행에게 겁탈당하는 장면, 반라의 여자들이 남자 귀족들과 벌이는 노골적인 유희 장면 등이다. (02)542-0350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