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과학기술계의 '스마트 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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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성 중기과학부 기자 ihs@hankyung.com한국경제신문의 연중기획 ‘스트롱코리아’ 취재를 위해 대전 대덕연구단지를 방문했을 때다. 출연연구소 박사급 연구원 10여명을 대상으로 취재에 들어가자 마치 ‘결핍증’에 걸린 사람들처럼 애로사항을 토로했다. “개인수탁과제(PBS)가 너무 많다” “정부가 우릴 좀 가만히 놔뒀으면 좋겠다” “내 자식은 연구원 안 시킨다” “과학기술부를 부활시켜달라” 등. 질문과 답이 오가는 게 아니라 ‘민원’을 듣는 형태로 흘러갔다.
30일 열린 스트롱코리아 비전선포식 정책토론회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빚어졌다. 정책토론회에 나선 각계 전문가들 중 과학기술분야 인사들은 한결같이 정부의 책임있는 변화를 촉구했다. 마지막 발제자로 나선 최종배 교육과학기술부 전략기술개발관은 “더 성토가 이어지기 전에 빨리 마무리해야겠다”는 뼈 있는 농담을 했다.해마다 연구·개발(R&D) 자금 수십조원을 쏟아부어도 과학기술자들이 춤추지 않는 이유는 뭘까. 자긍심을 가질 수 없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출연연구소 모두가 국가과학기술위원회로 소속 일원화를 원하지만, 지식경제부의 반대로 ‘씨알’도 안 먹히는 상황이 한 예다. 이뿐 아니라 연구현장에는 비정규직도 많고, 정규직이라도 정년이 짧다. 그렇다고 연봉이 많은 것도 아니다. 한 출연연구소 연구원은 “어딜 가서 자랑스럽게 ‘연구원’이라고 말할 수 있는 연구원은 한 명도 없을 것”이라며 “기회가 된다면 모두 대학이나 해외로 가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2010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자금이 세계 3위라는 것은 분명 의미있는 통계다. 그러나 그동안 R&D 자금은 하드웨어 지원에 초점이 맞춰졌다. 묵묵히 연구에 매진하는 과학기술자들의 복지와 처우를 개선하거나 사회적인 존경을 보내는 소프트웨어 지원은 드물었다. 단순히 건물과 장비를 사는 데 돈만 쏟아붓는다면 ‘단군이래 최대 사업’이라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도 그저 그런 출연연구소 50개를 추가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출연연구소의 국과위 소속을 지지하고 과학계에 대한 질적인 지원을 중심으로 최근 정책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다. 스트롱코리아 정책토론회에서 나온 다양한 의견대로 이제는 과학기술자들의 마음을 추스를 수 있는 ‘스마트’한 처방이 필요한 때다.
이해성 중기과학부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