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자선냄비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난파 여객선 승객 1000여명이 미 샌프란시스코 해안에 닿은 건 1891년 겨울이었다.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던 난민을 돕기 위해 구세군 사관 조셉 맥피라가 나섰다. 오클랜드 부둣가에 큰 솥을 걸어 놓고 ‘솥을 끓게 합시다’라고 써붙이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돈을 넣기 시작했다. 영국 리버풀에 있던 자선 모금함 ‘심슨의 솥’에서 얻은 아이디어였다. 한 신문은 자선 솥이 세계 각국으로 퍼져가는 걸 보고 ‘돈을 모으는 신기한 장치’라는 이름을 붙였다.

구세군은 1865년 영국 런던에서 창립된 기독교의 한 교파다. 감리교 목사 윌리엄 부스가 기독선교회를 만든 뒤 1878년 조직을 군대식으로 바꾸었다. 세계 118개국에 교회 1만5000여곳, 교인 150여만명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에 자선냄비가 처음 등장한 건 1928년이다. 일제의 수탈에 흉년과 수해까지 겹쳐 거지들이 들끓던 시기였다. 스웨덴 출신 구세군 정령 조셉 바아(박준섭)가 서울 명동 종로 등 20여 곳에 내걸고 모금을 시작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급식소를 열어 끼니를 거른 사람들에게 밥과 국을 먹이고 옷도 나눠줬다. 요즘으로 치면 무료 급식소다. 그 후 매년 연말이면 빨간 냄비와 딸랑거리는 종소리로 이웃 사랑의 소중함을 일깨웠다. 올해도 전국 300개 지역에 자선냄비가 걸렸다. 오는 24일까지 45억원 모금을 목표로 잡았다. 시내뿐 아니라 고속도로 톨게이트 9곳에도 설치됐다. 냄비에 부착된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찍어 기부를 하거나 ARS·인터넷·자동이체까지 방법도 다양해졌다.

1868년 말 앤드루 카네기가 뉴욕의 한 호텔에서 이런 결심을 한다. ‘앞으로 재산을 늘리기 위해 어떤 노력도 하지 않겠다. 생활비를 뺀 나머지는 선행에 쓰겠다.’ 20여년 뒤 카네기는 ‘부의 복음’이란 책에서 “부자의 삶은 부를 일구는 전반부와 부를 나누는 후반부로 나뉘어야 한다”고 썼다. 헤밍웨이는 쿠바의 버진성당에 노벨상 상금을 기부한 후 “당신이 무엇인가를 소유했음을 알게 되는 것은 그것을 누군가에게 주었을 때”라고 했다.

자선냄비에 소복이 쌓이는 건 주로 코흘리개 어린이들이나 콩나물값도 깎는 주부들의 작은 정성이다. 저의가 분명치 않은 거액의 기부보다 따뜻한 마음에서 나오는 소액의 나눔이 더 가치가 있을지도 모른다. 세밑 도움이 꼭 필요한 이웃에 크든 작든 정성을 나눠주는 것을 망설이지 말 일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