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의 선율] 화창한 브라질의 들녘 야자수 너머로 식민지배자의 말발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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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스 포스트의 '개미핥기가 있는 브라질 풍경'1637년 1월 네덜란드 식민지 개척의 영웅 나사우-지겐 공작이 브라질 헤시피에 첫 발을 디뎠다. 17세 때부터 세계 각지의 전장을 누빈 이 베테랑 군사지도자는 탁월한 지략으로 라틴 아메리카의 포르투갈령 식민지와 서부 아프리카의 루안다와 앙골라를 정복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러나 그는 보기 드문 이상주의자였다. 여느 식민지 지도자들과는 달리 자신의 정복지를 지상 낙원으로 만드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그는 자신이 지배하는 지역에 서구식 건물과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는 한편 가톨릭 개신교 유대교가 함께 참여하는 이상적인 시의회를 만들었다. 동인도회사의 반발로 미완에 그치긴 했지만 그의 이상적인 정치에 감복한 네덜란드 인문주의자들은 그에게 라틴어 시를 헌정, 경의를 표할 정도였다.
나사우-지겐 공작 수행 포스트
현지 제작 스케치 바탕…열대 밀림 이국적 풍경화 남겨
서구 '오리엔탈리즘' 시각 뚜렷
▶ QR코드를 찍으면 명화와 명곡을 함께 감상할 수 있습니다.
지겐 공작은 브라질 총독으로 부임할 때 세 명의 기록 화가를 대동했는데 그중에는 프란스 포스트(1612~1680)라는 젊은 화가도 끼어 있었다. 동료 화가인 알베르트 에크우트가 브라질의 인종적 특성을 기록하는 임무를 맡은 데 비해 포스트는 브라질의 지형적 특징과 동식물군을 기록하라는 명을 받았다. 아버지와 큰형으로부터 그림을 배운 그는 아직 직업적 길드에 가입조차 않았지만 형의 추천으로 큰 행운을 잡았다. 이렇게 해서 그는 브라질에 1637년부터 5년간 머무르며 네덜란드에서 볼 수 없는 이국적인 동물과 식물들을 그려 본국으로 보냈다. 그는 브라질에 머무는 동안 오로지 스케치에만 몰두했고 유화는 겨우 6점만을 제작했다. 이때 남긴 작품들은 필립 코닉 같은 16세기 네덜란드 풍경화의 거장들이 만들어놓은 전형을 모방한 것들이었다. 이는 화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회색빛의 드넓은 하늘과 미세한 대기의 변화를 포착하는 섬세한 표현기법에 잘 드러나 있다.
1642년 포스트가 네덜란드로 돌아왔을 때 화가들의 생존환경은 크게 변모하고 있었다. 고향인 하를럼이 프로테스탄트의 주요 근거지 중 하나가 되면서 교회는 더 이상 화가들에게 성화를 주문하지 않았던 것이다. 생존권의 위협에 처한 화가들은 자신만의 장르를 개척, 소비자들의 기호에 영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동시대 화가인 프란스 할스는 초상화가로, 라위스달은 풍경화가로 저마다 입지를 굳히고 있었다.
포스트 역시 이런 흐름에 발맞춰 브라질 거주 이전의 화법을 버리고 대중 취향의 새로운 화풍을 개척한다. 1649년에 그린 ‘개미핥기가 있는 브라질 풍경’에는 그의 변모한 화풍이 잘 드러나 있다. 먼저 구도를 살펴보면 동시대 네덜란드 풍경화가들의 예를 따라 화면의 절반 이상을 하늘로 채우고 있다. 그러나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즐겨 그린 라위스달과 달리 포스트는 뭉게구름이 평화롭게 떠가는 화창한 날씨를 묘사, 전체적으로 밝은 화면을 연출하고 있다.그의 그림이 동시대 화가들과 갖는 가장 큰 차이는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이국적인 요소다. 한창 식민지 개척에 열을 올리던 시대에 네덜란드 시민들에게 이국의 낯선 풍물만큼 흥미를 끄는 대상도 드물었다. 포스트는 시작부터 한 수 업고 들어갔던 셈이다. 그림을 보면 전면에 야자수와 함께 파인애플, 고무나무, 선인장을 비롯한 갖가지 열대식물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어 전형적인 브라질의 울창한 밀림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실제 밀림은 이보다 훨씬 많은 나무와 식물들로 뒤엉켜 있다.
포스트는 감상자들이 식물도감을 볼 때처럼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조금은 듬성듬성하게 배열하는 친절을 잊지 않았다. 덕분에 식물들은 저마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오랫동안 지질 및 식생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습득된 직업적 타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 한가운데서 어슬렁대는 낯선 동물은 개미핥기로 이국적인 느낌을 강화하는 촉매 역할을 한다. 밀림 너머에는 널따란 늪지가 지평선이 맞닿은 곳까지 펼쳐지고 그 오른쪽에는 야트막한 구릉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화가인 그가 묘사한 브라질 풍경은 맹수로 득시글대는 야생의 자연이 아니라 사람의 손길로 다듬어져 문명화된 자연이다. 밀림 뒤 개간된 농지에서 수확하는 풍경과 구릉 위의 서구식 건물들은 이곳이 네덜란드 문화의 세례를 받은 축복의 땅임을 과시하고 있다. 특히 말 위에서 브라질 원주민들을 부리는 감독관의 모습 속에는 지배자로서의 네덜란드 위세를 과시하는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이 투영돼 있다. 그림을 구매하려던 네덜란드인들에게 이처럼 매혹적인 요소가 또 어디 있겠는가. 결국 이 그림은 네덜란드인의 눈으로 재해석한 식민지 개척시대 네덜란드의 영광을 기리는 시각적 찬가인 셈이다.
◆ 명화와 함께 듣는 명곡 - 빌라로부스 '브라질풍의 바흐'
프란스 포스트의 ‘개미핥기가 있는 브라질 풍경’이 네덜란드인의 눈으로 재해석한 브라질 풍경이라면 에이토르 빌라로부스(1887~1959)의 ‘브라질풍의 바흐’는 브라질인의 감성으로 재해석한 서양 고전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빌라로부스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강권에 못 이겨 서양 고전음악에 발을 들여놨지만 그의 마음은 항상 브라질의 토속적 민요와 대중음악 쪽에 더 기울어 있었다.
아버지의 죽음 후 가출한 그는 피아노를 치며 생계를 유지하는 한편 방대한 국토를 순례하며 토속음악의 멜로디와 리듬을 터득한다. 그렇게 해서 얻은 노작을 1918년 브라질을 방문한 피아니스트 루빈스타인이 연주하면서 그는 세계적인 대가의 반열에 오른다.
‘브라질풍의 바흐’는 1930~1945년에 걸쳐 작곡한 것으로 모두 9개의 소곡으로 구성됐는데 서구 고전음악과 브라질의 민속음악을 절묘하게 결합한 것이다.
각각의 곡은 공통의 멜로디를 바탕으로 저마다 색다른 변주를 이뤄나가고 있어 제목이 표방하는 것처럼 바흐음악의 푸가적 특성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특히 매곡마다 색다른 악기 편성을 도입, 독창적인 음악 형식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그중 ‘소프라노와 8대의 첼로를 위한’ 제5곡은 클래식 팬은 물론 대중들로부터도 여전히 열광적인 반응을 얻고 있는 빌라로부스의 대표적 명곡이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 미술사학박사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