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욕의 득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발칙하다. 세종대왕이 툭하면 막말을 하다니. “하례는 지랄, 하례 대례 조례 가례. 대체 왕은 뭔 놈의 의식이 그리 많은지.” “그런 것들은 세자에게 이관을 했건만, 젠장.” “서책을 보고 정사를 보는 데도 시간이 모자라는데, 우라질.”

SBS 수목극 ‘뿌리깊은 나무’가 화제다. 세종의 한글 창제 과정을 다룬, 자칫 뻔해질 수 있었을 드라마가 동 시간대 시청률 1위가 된 데 대한 해석은 간단하다. 한석규 장혁 등 배우들의 연기도 좋지만 그보다 욕쟁이 임금이 주는 친근감 덕이란 것이다. 욕도 잘만 쓰면 이렇게 약이 된다. 때와 장소 내용을 구분하면 하는 사람에겐 카타르시스, 듣는 사람에겐 해방감과 대리만족을 가져다주는 까닭이다. ‘욕 배틀’이란 별칭을 얻은 영화 ‘황산벌’은 물론 욕쟁이 할머니와 독설 개그에 대한 박수도 같은 맥락에서 비롯됐을 게 틀림없다.

욕은 ‘묵은 체증도 쉽게 내리게 하는 약’(김열규)이라거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정서를 정화시켜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는 순기능을 갖는다’(강기수)는 얘기도 있다. 뿐이랴. 영국 킬 대학 심리학과 리처드 스티븐스와 클라우디아 움란드 교수팀은 욕이 신체적 고통을 줄이는 진통 효과도 지닌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건 어쩌다 하는 경우고,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에겐 아무 소용도 없다고 덧붙였다. 욕이 해롭다는 연구결과도 많다. 욕이 일반 단어보다 네 배나 더 오래 기억된다는 것도 있고, 말할 때 튀는 침 파편을 분석했더니 평상시엔 무색이요, 사랑한다는 말을 할 땐 분홍색, 화 내거나 욕할 땐 짙은 갈색이었는데 이 갈색 침전물을 흰쥐에게 투여했더니 곧 죽었다는 것도 있다. 이른바 ‘분노의 침전물’이다.순기능이 더 많다고 여기는 걸까. 여기저기 욕이 넘친다. 초·중·고생 1명이 75초마다 욕을 한다는 마당이다. 이유는 ‘멋있어 보이고 재미있다’ ‘친근감 표시’ ‘습관’ ‘주의를 끌거나 위세를 부리기 위해’ 등이다.

청소년만 그런 것도 아니다. 어른, 그것도 사회적 영향력을 지닌 이들이 표현의 자유 운운하며 경박한 말, 거친 욕을 일삼는다. 욕하는 이들은 상대가 당황하면 자신이 강하다는 착각에 빠진다고 한다. 그러나 어떤 욕으로도 남을 제압할 수 없다.

“버섯이 곱다 한들 화분에 떠서 기르지 않듯, 욕설이 아무리 뛰어난 예능을 담고 있다 한들 그것은 응달의 산물이며 불행의 언어가 아닐 수 없다”(신영복)는 말도 있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