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결정하는 건 첫 직장이 아닌 마지막 직장"

新청년리포트 (2) 스펙의 늪 - 청년에게 말한다 (2) 김난도 서울대 교수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 꿈이 현실 방해해선 안돼 얼마나 절실한지 고민해야
지나치게 현실지향적 - 단기적 '스펙 수집'에 쫓겨…단점 보완보다 장점 키워라
지난달 중순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저자 김난도 교수를 만나러 서울대를 찾았을 때는 총학생회 선거운동이 한창이었다. 김 교수의 연구실이 있는 생활과학대 건물에도 어김없이 선거 유세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건물 외벽에는 ‘분노’ ‘투쟁’ ‘실천’이란 단어들이 나붙어 있었다.

후보들은 서울대를 둘러싼 이슈 가운데 하나인 법인화법 폐기는 물론 월가 점령시위, 반값등록금 운동, 세계 경제위기 등 사회문제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학생들에게 알리기에 바쁜 모습이었다. 수업 개설 문제, 장학금 확대 등 학생 복지와 관련된 공약은 별로 없었다. 젊은이들에게 ‘난도쌤’은 어떤 얘기를 해줄지 궁금했다. 김 교수는 ‘청춘들의 멘토’로 꼽히는 인물이다. 작년 이맘때 출간된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요즘도 꾸준히 팔리는 밀리언셀러. 책에 실린 ‘슬럼프에 대하여’란 글은 미니홈피 블로그 등을 타고 많은 젊은이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김 교수는 연구실에서 매년 발간하는 소비 관련 저서 ‘트렌드코리아’의 탈고작업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는 “이 책을 쓰느라 답장을 못한 상담 메일이 수십통에 이른다”고 했다. 연구실에는 전국의 수많은 청춘들이 ‘아픔’을 써서 보낸 편지가 가득했다.

▶요즘도 상담을 요청하는 젊은이들이 많은 모양입니다.

“책을 낸 뒤로 이메일이나 편지로 상담 요청이 많이 옵니다. 지금까지 온 편지가 1000여통은 될 거예요. 학생뿐 아니라 부모들로부터도 편지가 많이 와요.”▶부모들도 편지를 보낸다니 의외네요.

“자기 자식이지만 어떻게 조언해줄지 막막한 거죠. 요즘 젊은이들은 일방적인 얘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 때는 위인전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기도 했지만 요즘 청년들은 위인전을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아요. 우리나라는 정치 사회적 변화가 굉장히 심해서 부모들처럼 기성세대 가치관을 갖고 의사소통을 하는 방식으로는 젊은이들을 멘토링하기 쉽지 않습니다. 국민소득 1만달러가 넘은 1990년대에 태어난 학생들에게 ‘너희 세대는 팔자 좋다’고 얘기할 수는 없는 일이죠. 우리가 살아온 40년과 젊은이들이 살아갈 40년은 정말 다른 사회일 텐데 말이죠.”

▶구체적으로 어떤 고민이 많은가요.“학생들은 진로 문제로 고민이 많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겠다는 거죠. 직장에 다니는 젊은이들은 이직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고요. 부모님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이 좋은 직장이라고 해서 무작정 들어갔는데 막상 자신의 적성과는 맞지 않아 고민이라는 거예요.”

▶이직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겐 어떤 조언을 해주시나요.

“지금 일이 견디기 힘들어서 그만두려는 건지, 현재 나쁘지 않지만 다른 분야에 더 관심과 열정이 생겨서 그러는 건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고 해요. 전자라면 그만두지 말라고 합니다. 너무 힘들 때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도피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에요. 물론 후자일 경우에도 단순히 ‘네 꿈을 찾아 떠나라’고 얘기하는 건 무책임하다고 생각합니다. 꿈이 얼마나 절실한지 스스로 깨달아야 해요. 꿈이라는 게 현실을 방해하는 무엇이 되어선 안 됩니다. 스스로 꿈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라고 합니다. 진로 문제를 고민하는 젊은이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청춘이라는 단어가 과거에는 열정, 도전정신을 나타내는 이미지였는데 요즘은 아픔과 슬픔, 좌절과 분노를 대신하는 말로 쓰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회가 굉장히 경쟁적이잖아요. 옛날에는 모두가 못살았지만 나라 경제가 고도 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기회가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 사회는 좋게 말하면 안정적인 거고, 나쁘게 말하면 정체돼 있어요. 새로 사회에 진입해야 하는 젊은이들에게 기회가 많지 않다는 얘기죠. 그래서 청년들이 아파하고 분노하는 거예요.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혹한 현실에 처해 있는 거죠.”

▶기성사회에 대한 젊은층의 불만이 상당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젊은이들을 바라보는 시각도 ‘이해한다’는 쪽과 ‘철없다’ 는 쪽으로 극명하게 나눠지는 것 같아요.

“왜 청년들을 극단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지 모르겠습니다. 각자의 입장에서 그들을 해석하는 거죠. 당연히 개개인의 청년도 노력해야 하는 거고, 사회도 변혁이 필요합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너무 ‘현재지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절약하고 허리띠 졸라매자는 사회적 합의도 있었고, 배가 고프더라도 우리 자녀들은 한자라도 더 가르치겠다는 의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헬리콥터로 돈을 뿌리자’는 식의 주장이 난무합니다. 예를 들면 소프트웨어 산업이 죽었다고 하면서 예산을 지원해주겠다고 합니다. 그걸로 그 산업이 살아납니까. 그런 대증요법으로는 청년들의 고민을 해결해주지 못합니다.”

▶청년들이 자신의 불만을 보다 생산적인 에너지로 전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멀리 보고 자기 자신에 대한 투자를 하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우리 사회와 마찬가지로 청년들도 현재지향적인 것 같아요. 취업을 위해 어쩔 수 없겠지만, 단기적으로 스펙을 수집해야 한다는 강박이 강해요. 단점을 보완하려는 청년들이 많은데, 오히려 장점을 더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항상 첫 직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지막 직장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마지막 직장이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첫 직장을 잘 잡아야 마지막 직장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 아닙니까. 처음부터 대기업 입사를 원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 테고요.

“성공 사례가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청년들이 다른 직업을 생각하려고 해도 정보가 많지 않아요. 파티셰(디저트를 전문으로 만드는 요리사)가 주인공인 TV 드라마가 유행하면 젊은이들 사이에서 파티셰 열풍이 부는 것처럼 보다 많은 직업 정보와 성공에 대한 관점을 제공해야 합니다. 무턱대고 청년들에게 창업을 권하는 것도 좋지는 않습니다. 우리 사회는 아직 폐쇄적인 부분이 많아 열정만 갖고 창업해봐야 난관에 부딪치는 사례가 많습니다. 사회적으로 공정한 토양을 만들어주면서 성공 사례를 계속 배출하면 얼마든지 다양한 꿈을 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행정고시에 낙방한 경험이 있으시죠.

“법학을 공부했지만 법조인보다 공무원이 되고 싶었습니다. 판사나 검사는 문제가 터지고 난 다음에 해결하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대학에 다닌 1980년대에는 정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던 때라 행정고시에 합격해 군수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시험에서 떨어진 뒤 미련 없이 포기했습니다. 지금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해요.”

▶여전히 오답노트를 쓰십니까.

“지금도 가끔 씁니다. 항상 강연을 한 뒤에는 복기를 해봐요. 어떤 에피소드에 학생들의 반응이 좋았는지, 불필요한 말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개선하는 거죠. 오답노트를 쓴다는 건 정답만 찾으려는 게 아닙니다. 어제보다 오늘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개인적으로 더 많은 발전의 기회를 갖고자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청년들에게 당부할 말이 있으신지요.“조급해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요. 차근차근 배워가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실수를 많이 해도 좋아요. 다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면 됩니다. 부모님들에게도 자녀가 다소 실패하고 방황하더라도 스스로 해법을 찾을 수 있도록 기다려달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