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치열해진 스펙 전쟁…봉사·성형 더해 '취업 9종세트'

新청년리포트 (2) 스펙의 늪
‘스펙’이 진화하고 있다. 학벌-학점-영어점수라는 전통적인 ‘취업 3종 세트’에 어학연수와 자격증이 붙어 ‘5종 세트’, 다시 공모전 입상과 인턴 경력을 더해 ‘7종 세트’, 최근엔 봉사활동과 성형수술까지 추가해 ‘취업 9종 세트’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스펙이라는 단어는 원래 PC 등 정보기술(IT)기기들의 성능을 가리키는 ‘specification’이란 단어에서 유래했다. 중앙처리장치(CPU) 램(RAM) 메모리 디스플레이 등 부품별 성능을 따져 IT기기들의 우열을 가릴 수 있는 것처럼 특정 기업이나 업종에 취업을 희망하는 구직자들의 취업 준비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이 단어가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기 시작한 시기는 2002년께다. 1997년 이후 대학에 입학한 이른바 ‘포스트 IMF 세대’들이 사회생활을 시작한 시기와 일치한다. 경제위기를 겪은 대학생들이 취업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 등장했다는 얘기다.

2005년께 스펙 3종 세트는 5종 세트로 확대된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오피스 프로그램 자격증인 MOS나 증권투자상담사 등의 금융 직종 자격증 등이 주요 스펙에 추가되기 시작한 것. 어학연수를 떠나는 학생들의 비율도 이때를 기점으로 급격히 높아졌다. 2007년 한 대기업에 입사한 안모 씨(31)는 “취업을 준비하면서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넣기 위해 MOS를 땄다”고 말했다.

그 뒤로는 보다 조직적인 움직임이 나타나게 된다. 기업들의 면접 강화 움직임과 맞물려 취업을 위한 각종 스터디클럽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대학 재학 중에 미리 기업에서 인턴 경험을 쌓는 것도 주요 스펙이란 인식이 높아졌다. 내년 2월 졸업을 앞둔 안수현 씨(21·이화여대 전자공학과)는 “기업 인턴십은 해당 기업의 취업으로 직결되는 경우가 많아 대학생들이 필수 코스로 생각한다”며 “하지만 ‘인턴=금턴’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기회가 많지는 않다”고 말했다.스펙 경쟁은 2008년 하반기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다시 한번 진화를 거듭한다. 봉사활동이나 각종 사회 경험이 더해졌고 기업이나 금융회사들이 실시하는 각종 공모전도 중요하게 언급되기 시작했다. 어학 실력도 토익 점수나 연수 경력이 아니라 실제 영어 면접 등을 통해 능숙하게 비즈니스용 영어를 쓸 수 있는지가 중요해졌다. 이런 식으로 스펙이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자 기업 인사담당자들 사이에서는 ‘단군 이래 최대 스펙으로 무장한 구직자들’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조귀동/김주완/양병훈 기자 claymo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