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소방관의 기도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일본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누출사고가 터진 지난 3월 도쿄소방청은 소방대원 139명을 현장에 급파했다. 이들은 피폭 위험을 무릅쓰고 고가 사다리차, 펌프차 등을 끌고 긴급 출동했다. 다른 지역 소방청들도 속속 동참의사를 밝혔다. 소방청 간부들은 늦은 밤 열린 기자회견에서 무엇이 가장 힘들었느냐는 질문을 받자 이렇게 대답하며 울먹였다. “대원들입니다. 보이지 않는 적과의 싸움이라 무척 위험하지만 모두 열정적입니다. 대원 가족들에게 정말 미안합니다 ….”

9·11테러로 세계무역센터가 화염에 휩싸였을 때 탈출하는 사람들로 북새통인 비상계단에서 거꾸로 올라가는 소방관이 카메라에 잡혔다. 왜 올라가느냐고 묻자 소방관은 “이게 내 일”이라는 말을 남긴 채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 당시 347명의 소방관이 순직했다. 미국·유럽에서 소방관은 선망의 대상이다. 목숨을 걸고 타인을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이 대단한데다 넉넉한 보수로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어서다. 순직하면 영웅 대접을 받고 유족 생계도 나라가 책임진다. 프랑스는 현장 순직 소방관에게 최고훈장을 준다.우리도 한 해 평균 6~7명씩 순직하고 300여명이 부상당한다. 하지만 반짝 관심 후 금세 잊혀진다. 근무 여건도 나쁘다. 2교대로 주 80시간 넘게 일하기 일쑤지만 기본급 외에 받는 건 위험수당 5만원과 화재진압수당 8만원이 전부다. 끔찍한 장면에 자주 노출되다 보니 36.8%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는데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다. 평균 수명은 58.8세로 남성 평균보다 무려 18세나 낮다.

평택 가구전시장 화재현장에서 순직한 한상윤 소방장과 이재만 소방위의 영결식이 어제 열렸다. 동료들을 먼저 내보내고 나오다가 천장이 무너지는 바람에 순직했다. 이 소방위는 “나는 영혼을 구할 테니 너희는 목숨을 구하라”는 목사 아버지의 뜻에 따라 형과 함께 소방관이 됐다고 한다. 한 소방장은 임신한 아내와 쌍둥이 아들에게 주말 캠핑 가자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연이 알려지면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미국의 스모키 린이라는 소방관은 1958년 불에 갇힌 어린이 3명을 구하지 못한 괴로움에 시달리다 참회의 시를 썼다. ‘소방관의 기도’다. ‘아무리 거친 화염에서도/한 생명을 구할 힘을 주소서/너무 늦기 전에 어린아이를 안고/공포에 떠는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당신의 뜻에 따라/내 목숨을 드릴 때/당신의 손으로 내 아이와 가족을 축복하소서.’ 두 소방관의 명복을 빈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