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D가 문제라고?…국내기업들 이미 활용

로펌들 40~50여건 법률자문…해외 투자 자산 보호수단으로
한국은 이미 ICSID조약국…FTA 반대 이유 성립 안돼
국내 굴지의 대기업 A사는 지난해 한 개발도상국에 투자한 자산이 간접수용될 위기에 처하자 법률사무소 김앤장을 찾았다. 자산을 직접 몰수당하지는 않더라도 해당 국가의 외국 기업에 대한 차별적인 정책에 따라 큰 손실을 볼 상황이었다. 이 기업은 김앤장의 법률 자문에 따라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를 이용할지 여부를 현재 검토 중이다.

국내 통신기업 B사는 2005년 아시아 2개 국가 정부와 합작해 현지에 설립한 회사를 이들 정부가 몰수하려하자 법무법인 태평양에 법률자문을 구했다. 태평양은 ISD 제기를 준비했고, 이를 안 상대방 국가 정부들은 몰수 방침을 철회했다.국내 기업들이 해외 투자 과정에서 현지 국가의 부당한 차별정책에 맞서 ISD를 활용하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를 앞두고 일각에서는 국내 산업의 피해를 우려하며 ISD 도입 반대를 주장하고 있지만 국내 기업들이 투자자산 보호수단으로 ISD를 적극 이용하려는 추세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국내 로펌들이 현재까지 기업들로부터 ISD와 관련해 법률자문을 한 건수는 총 40~50건으로 추정된다. 김앤장은 현재까지 10여건의 ISD 제기 문제에 대해 법적 자문을 했으며 태평양과 광장도 비슷한 건수를 다뤘다. 세종과 화우, 율촌 등에도 5~7건의 자문 건수가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앤장의 한 변호사는 “해외에 투자한 국내 기업들이 최근 들어 1년에 3~4건은 ISD 제기 문제를 문의한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국내 기업이 정식으로 ISD를 제기한 사례는 없지만 B사 사례처럼 ISD를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저개발국 정부에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김갑유 태평양 변호사는 “한국은 행정소송이 잘 발달돼 있어 외국 기업이 굳이 ISD를 이용하지 않고 국내 법원에 바로 소송을 내면 되지만 일부 개도국이나 저개발국들은 그렇지 않다”며 “부당한 차별을 받은 한국 기업이 ISD에 기대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과거 외국 기업이 한국을 상대로 제기하려 한 사례도 없지 않다.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미국 총기업체인 콜트사가 1980년대 중반 한국의 무기현대화 정책에 항의해 ISD를 제기하려다 합의로 마무리했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한국은 1967년부터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ICSID) 조약에 가입해 있다”며 “FTA 체결이 아니라도 이 조약에 따라 미국 기업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ISD를 제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FTA가 체결되면 ISD의 구체적인 적용 대상과 강제성이 정해진다”고 덧붙였다.

임성우 광장 국제중재팀장은 “한국이 과거에는 투자를 일방적으로 받는 국가였지만 이제는 세계 곳곳에 진출해 투자를 하는 주체”라며 “ISD는 (저개발 국가로) 해외 투자를 하는 국내 기업을 보호하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이재기 화우 국제중재팀장은 “ISD를 이유로 FTA를 반대하는 것은 전혀 논리가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