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 · 자영업자 41% 소득세 한 푼도 안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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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뚫린 소득세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정치권 일각에서는 고소득자와 자산가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은 정반대다. 소득세를 내지 않는 사람들이 오히려 늘고 있다. 고소득자 세율을 높이기에 앞서 과세기반을 더 넓혀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최고구간 신설 앞서 비과세·감면제 손질
월급쟁이만 유리지갑…지하경제도 줄여야"
◆소득세 납부자 너무 적어 한국의 근로자와 자영업자는 10명 중 4명 정도가 소득세를 한 푼도 내고 있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에서는 면세점(세금을 면제하는 기준이 되는 한도)이 따로 없어 소득이 있는 사람은 세금을 내야 하지만, 복잡한 비과세·감면으로 과세표준액이 ‘0원’인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다.
5일 국세청과 조세연구원 등에 따르면 작년 근로소득자 1516만명 가운데 과세자는 924만명으로 60.9%에 그쳤다. 592만명은 세금을 내지 않았다.
사업소득자 523만명 중 과세미달자는 247만명이었다. 둘을 합치면 작년 근로자와 자영업자 2039만명의 41.1%인 839만명이 세금을 내지 않은 셈이다.이 수치는 2009년 812만명보다 27만명이나 늘어난 것이다. 한국에서는 ‘10명 중 4명이 소득세를 내지 않는다’는 게 정설이 됐다.
국세청에 따르면 현행 세법에 명시된 비과세와 감면 규정을 다 적용받으면 4인 가족(부부와 자녀 2명) 기준으로 연 소득이 1770만원 이하이면 소득세를 내지 않는다.
국세청 관계자는 “한국의 실질적인 면세점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높은 편”이라며 “복지 제도가 발달한 유럽에서도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최소한의 세금은 거두고 있다”고 말했다. 비과세·감면을 줄여 면세점을 낮출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헌법 38조에서도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납세의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면세점을 10% 정도만 낮춰도 소득세 최고구간을 신설해 40% 세율을 적용했을 때 예상되는 세금 1조원보다 훨씬 많은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고소득 자영업자 소득파악
과세 기반을 넓히려면 먼저 소득이 제대로 파악돼야 한다. 고소득 자영업자들 중 일부는 아직까지도 상당한 소득을 숨기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기 때문이다.작년 민간소비지출액 615조원 중 카드와 현금영수증 사용액 478조원을 제외한 137조원 중 상당액이 세원에서 제외된 것으로 추정된다. 국세청이 2005년 이후 10차례에 걸쳐 고소득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세무조사를 실시한 결과 평균 소득탈루율은 48%에 달했다. 실제 번 소득의 절반도 신고하지 않은 것이다.
카드 소득공제나 비과세·감면 혜택을 한꺼번에 많이 줄이면 소득을 한 푼도 숨길 수 없는 월급쟁이들의 부담만 늘어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유리알처럼 세원이 노출된 급여생활자들의 세부담을 늘리기보다는 소득 탈루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얘기다. 무작정 소득세 부과대상을 늘리려는 것은 근로장려금 등으로 저소득자를 직접 지원하고 있는 정책과도 상충될 수 있다.
◆지하경제 줄여야
조세 형평성을 높이려면 탈세의 근원지인 지하경제를 줄이는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 한국의 지하경제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20~30%로 추정된다. 지난해에만 330조원에 달하는 어머어마한 규모다. 소득이 노출되지 않는 지하경제에 숨어 세금을 내지 않는 탈루자들을 철저히 가려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소득세 최고구간 신설을 통한 세율 인상 등은 이 같은 세원 확대 다음에 논의되는 게 순서라는 지적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이미 3~4%의 고소득자들이 전체 종합소득세의 70%가량을 내고 있는 상황에서 또 세율을 올린다면 조세 저항이 상당할 것”이라며 “세수 확보 차원이라면 탈루 소득을 찾으려는 노력이 우선”이라고 설명했다.김재진 한국조세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비과세·감면 축소에 비해 세수 효과가 훨씬 큰 자영업자 소득 파악과 지하경제 양성화를 먼저 추진해야 한다”며 “재산의 국외 도피와 불법 상속 등을 막는 보다 강력한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