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처럼 살았다"…스톡옵션 1000억도 포기한 박병엽의 눈물

12월 워크아웃 졸업 앞두고 퇴진 선언
연초 심장수술에 피로·스트레스 누적
박병엽 팬택 부회장이 이달 말 워크아웃 졸업을 앞두고 돌연 사표를 던졌다.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더 이상 경영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했다. 실제 박 부회장의 몸 상태는 엉망이라고 한다. 그는 연초 심장혈관 스텐트 삽입수술을 받았다. 막힌 혈관을 뚫어 심근경색을 막기 위해서였다. 여기에 워크아웃 이후 누적된 피로와 스트레스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지경이라고 했다. “잠 좀 자고 마음 좀 편하게 먹고 싶다”는 게 6일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박 부회장의 사퇴 변이었다.

◆박 부회장의 거취 오리무중그동안 채권단과 다소간의 불화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박 부회장이 심신 건강 외에 다른 이유로 사퇴 카드를 던지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내년 3월 말까지만 일하면 팬택 지분 10%(1억6400만주)에 대한 스톡옵션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한평생 경영자로 살아온 인물이 향후 경영권을 되찾을 수 있는 강력한 지렛대인 스톡옵션을 포기한 사실은 누군가를 겨냥해 ‘쇼잉(showing)’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더욱이 이 스톡옵션의 가치는 현재 1000억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회사 임직원들도 스톡옵션 포기를 무척 놀라워하는 분위기다.

박 부회장은 향후 계획에 대해 “좀 쉬면서 생각해 보겠다”고 했지만 직선적이고 담백한 그의 성향을 감안할 때 단시일 내 태도를 바꾸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스스로 원한 일이긴 하지만 박 부회장은 경영자로서 2007년 워크아웃 이후 두 번째로 눈물을 흘린 셈이 됐다. ◆스마트폰 전략에 타격 불가피

문제는 팬택이다. 팬택은 51개월, 17분기 연속 영업흑자를 기록하며 거센 스마트폰의 경쟁파도를 성공적으로 넘고 있다. 지난 3분기엔 매출액 8275억원, 영업이익 54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40.58%, 영업이익은 무려 146.57% 급증한 규모다. 국내 최초로 안드로이드 기반 스마트폰을 출시했고 시리우스, 미라크, 베가 시리즈 등 히트폰을 잇따라 내놓으며 국내 2위 스마트폰 제조업체로 올라섰다. 일본과 미국에서도 예상 외의 선전을 펼치며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팬택 내부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박 부회장의 퇴진은 회사의 앞날에 적지 않은 타격을 줄 가능성이 높다. 그는 워크아웃이 시작되자 “창업자로서 회사를 살릴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다 내놓고 빈손으로 나가겠다”며 ‘백의종군’을 선언했다. 일요일을 포함해 거의 모든 공휴일을 반납하고 회사에 나와 임직원들을 독려했다. 자신을 던지는 박 부회장의 탁월한 리더십이 없었더라면 팬택이 여러 불리한 여건을 딛고 스마트폰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채권단과 업계의 일치된 견해다.회사의 한 관계자는 “퇴진소식을 접한 직원들이 거의 패닉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우선매수청구권 행사가 변수

워크아웃 종료에 따른 회사 경영 및 사업구조 재편도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팬택이 채권단과 워크아웃 종료를 약정한 시기는 오는 31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4500억원에 달하는 채권에 대한 차환(리파이낸싱)이 필요하다. 2200억원은 산업은행과 우리은행 등 워크아웃을 주도했던 채권은행들이 보유하고 있어 만기연장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새마을금고 신협 등 비협약채권자가 보유한 2300억원이다. 올해 말까지 상환해야 한다. 팬택과 채권단은 유상증자를 통해 비협약채권을 상환하려 했지만 경기침체 등으로 무산됐다. 채권단은 팬택에 2300억원을 지원해 비협약채권을 상환하려 했다. 하지만 일부 채권단이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다만 박 부회장이 스톡옵션과 달리 향후 회사 매각 시 자신에게 부여된 우선매수청구권까지 포기하지 않은 것은 경영복귀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

1991년 전셋돈 4000만원을 종잣돈 삼아 직원 6명으로 호출기 생산회사로 출발해 2005년 매출 3조원짜리 회사를 일궈냈던 박 부회장의 성공신화가 영원히 막을 내릴지 여부도 실낱 같은 그 가능성에 달려 있다. 재계와 금융권은 박 부회장의 퇴진이 단순 재충전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표현대로 ‘더 이상 바보처럼 살기 싫어서’ 그런 건지 내년 봄까지 촉각을 곤두세울 것으로 보인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