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수출육성'이 친서민 정책이다

외환 쌓아두면 경제위기때 빛나
적절한 고환율로 기업 뒷받침을

윤창현 < 서울시립대 교수·경영학 / 바른금융재정포럼 이사장 >
한때 잘나가던 한국경제는 1997년 외환위기를 당하고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210억달러의 지원을 받으면서 25% 근처의 고금리 정책을 요구받았다. 유례없는 고금리 아래에서 고통을 받고 있을 때 이를 보며 가장 놀란 국가 중 하나가 바로 중국이었다. 이때부터 중국은 IMF 지원의 문제점을 깨닫고 자체적으로 외환보유액을 화끈하게(?) 쌓기 시작했다. 더구나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타결 짓고 본격적인 성장의 닻을 올린 중국은 무역흑자행진을 계속했고 결국 가입 10년 만에 국내총생산(GDP) 규모 약 6조달러의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이 기간 쌓인 흑자가 바탕이 돼 외환보유액은 3조2000억달러의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지난번 유로존 정상회의가 새벽 4시까지 마라톤 회의로 이어지면서 그리스 문제가 논의됐을 때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은 새벽 1시께 후진타오 중국 주석에게 전화를 걸어 지원을 부탁한 바 있다. 물론 중국은 지원요청을 검토하겠다고 하고는 얼마 전 지원불가를 통보했다. 콧대 높은 유럽 국가들의 지원 요청을 받았을 때 아마 후 주석의 입가에 미소가 돌지 않았을까. 그리고 외교부 부부장이 외환보유액은 타국지원에 쓸 수 없는 돈이라는 원론적 코멘트와 함께 지원을 거부하면서 다시 한 번 자존심을 세우는 모습을 보며 10년 전에는 상상을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직시하게 된다.

중국이 큰 소리를 치는 뒤에는 막대한 무역흑자를 통해 쌓은 엄청난 외환보유액이 큰 몫을 하고 있다. 중국이 2008년 위기를 잘 견뎌낸 것도 바로 외환부문이 튼튼했기 때문이라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따지고 보면 우리도 마찬가지다. 외환위기를 당한 이후 우리는 10여년이 넘는 기간 동안 단 한번도 적자를 내지 않은 채 경상수지흑자 행진을 이어왔고 2008년 당시 약 2700억달러의 외환보유액을 쌓아놓았다. 이 덕분에 리먼이 파산하고 4개월여 사이에 약 700억달러가 빠져 나갔을 때에도 외환보유액 수준을 2000억달러로 유지하면서 큰 위기를 막은 것이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비록 천문학적 재정적자로 인해 국가부채가 GDP의 230%를 기록할 정도이지만 무역 흑자를 내면서 달러를 벌어들여 외환보유액을 1조달러 정도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경제가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다. 한·중·일 모두 국민경제 내에 좋은 기업들, 경쟁력 있는 기업들이 존재하고 이들이 수출을 통해 외화를 벌어 경상수지를 흑자로 만들어 국가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는 반대다. 그리스의 무역적자는 2008년의 경우 무려 GDP의 14% 수준이었다. 그리스 경제가 엉망이 된 것도 지속적 무역적자를 내면서 유로화가 밖으로 빠져 나가버린 것이 원인이 됐다. 그러고 보면 기업들이 대외경쟁력을 유지하면서 흑자를 내고 이를 중앙은행이 사들여 외환보유액으로 쌓아놓는 것이야말로 경제의 생명줄 같은 행위임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IMF가 요구한 살인적 고금리 아래에서 우리 경제의 성장률은 -6.9%를 기록했고 실업자는 130만명까지 증가했다. 위기가 오면 서민경제부터 힘들어진다. 달러를 확보하는 행위로서의 수출 자체가 친서민적 성격을 가지는 이유다.

최근 우리의 연초 대비 누적 수출이 5000억달러를 넘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정부가 고환율을 통해 수출기업의 배만 불리고 서민을 힘들게 한다는 식의 비판을 떠올리게 된다. 수출이 안 돼 달러가 부족해지면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계층이 서민층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논리에는 상당한 한계가 있다. 약간의 고환율은 우리가 적절한 수준의 외화를 확보해 경제안정을 달성하기 위한 보험료적 성격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세계 경제에 먹구름이 감도는 요즈음 우리 수출기업들이 더욱 힘을 내 세계경제 전쟁에서 지속적으로 선전(善戰)함으로써 위기의 그림자를 걷어내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윤창현 < 서울시립대 교수·경영학 / 바른금융재정포럼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