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짜맞은 '쇄신안'…홍준표號 붕괴 초읽기

洪대표 "나갈 때 되면 내 발로 나가겠다"

쇄신파 "즉각 사퇴하라"
우호적이던 친박도 등돌려
황우여 9일 최고委 불참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가 8일 재창당을 언급하며 당 쇄신 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쇄신그룹과 친박계가 홍 대표의 방안에 등을 돌리고 있어 홍 대표 체제는 풍전등화 상황이다.

홍 대표는 이날 저녁 자신에 대한 당내 일부의 퇴진 요구에 대해 “도저히 감당 못하겠다는 판단이 들면 당 구성원들에게 대안을 내달라고 하겠다”며 “나갈 때가 되면 내 발로 걸어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그때는 대안을 위한 모든 정치적 정비작업을 하고, 뒤에 들어올 후임자가 정치적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해놓고 나가겠다”며 “이미 일어났던 일과 앞으로 추진할 사항, 로드맵 등을 모두 정리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이날 발표한 1차 쇄신안의 공천 관련 부분에 대해서도 “공천작업을 이 정도로 정리해 놓으면 후임자가 별다른 부담 없이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후임자가 나오겠다면 대안이 되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홍 대표는 “박근혜 전 대표가 당의 전면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는 “꼭 그렇게 보지는 않는다”고 했고, 박 전 대표가 나선다면 “언제라도 정비작업에 착수해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이날 오후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과는 정반대되는 것이다. 홍 대표는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선 자신의 거취에 대해 “대안이 마련될 때까지는 대표직을 정상적으로 수행하겠다”며 당 지도부 교체론을 일축했다. 또 “혁명에 준하는 총선 준비를 하도록 하겠다”며 “당내외 인사로 구성된 ‘재창당 준비위’를 발족해 내년 2월 재창당하겠고, 13년 전통의 한나라당을 허물고 당을 완전히 재건축하겠다”고 자신했었다.

박근혜 전 대표 등 유력 대선 주자가 당권에 도전할 수 있도록 대선 1년6개월 전에 당직에서 사퇴하도록 돼 있는 당헌·당규도 개정하고, 부자정당과 기득권정당, 수구정당이라는 이미지를 말끔히 씻어내고 모든 국민과 함께하는 정당이 되겠다며 정책 쇄신 방향도 밝혔었다. 이 같은 홍 대표의 기류 변화는 쇄신그룹과 친박계까지 가세하며 홍 대표 체제를 흔들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정두언 의원은 홍 대표의 기자회견 뒤 기자와의 통화에서 “(홍 대표가) 오늘 발표한 개혁안은 어차피 누가 맡든 나오는 것”이라며 “그걸 홍 대표가 맡으면 안 된다는 것인데, 그걸 모르는 홍 대표가 안타깝다”고 했다. 원희룡 최고위원은 “당 대표직을 유지하겠다는 것 자체가 권력에 대한 집착”이라고 비판했으며, 남경필 의원도 “대표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지금 홍 대표가 할 일”이라고 가세했다.

개혁성향의 초선 의원 모임인 ‘민본21’은 “현 지도체제는 당이 처한 절체절명의 위기를 돌파할 리더십을 발휘하기에는 한계에 이른 만큼 (홍 대표가) 대승적인 결단을 내려주기를 희망한다”며 “당의 방향이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 경우 비상한 결단을 내리겠다”고 탈당까지 시사했다.

이에 따라 황우여 원내대표는 당장 9일 열리는 최고위원회의에 불참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주영 정책위 의장까지 회의에 참석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쇄신파와 친박계의 표로 당선된 황 원내대표와 이 의장이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지 않으면 최고위는 사실상 의결권을 잃게 된다. 최고위는 총 9명으로 구성되는데 참석 인원은 3명에 그친다.여기에 친이계인 차명진 전여옥 나성린 안형환 의원 등 한나라 재창당모임 소속 의원들도 홍 대표 등 지도부가 사퇴해야 한다며 제동을 걸고 있다.

김재후/도병욱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