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집단 관음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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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프로이트는 자신이 쓴 편지나 원고 초고를 몇 차례에 걸쳐 없애버렸다. 젊었을 때 스스로 동성애 경향이 있다는 걸 고백했을 만큼 절친했던 친구 빌헬름 플리스에게 보낸 편지를 돈 주고 사들이려 했을 정도다. 전기작가들을 골탕먹이기 위해서라고 농담섞인 해명을 했다지만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엿보고 싶어하는 인간 본능을 잘 알고 있던 까닭에 자신의 약점을 싹 지워버렸다는 해석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인간의 엿보기 본능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게 관음증(觀淫症)이다. 언젠가 네덜란드의 케이블TV가 서로 모르는 성인 남녀 여러 명이 격리된 공간에서 100일 동안 함께 생활하는 모습을 여과 없이 내보냈다. 최고 시청률은 눈이 맞은 남녀 참가자가 불을 끄고 벌인 사랑 행위를 적외선 카메라로 중계하는 동안 기록됐다. 루퍼트 머독이 ‘언론 제국’을 만들기 위해 택한 것도 관음 전략이었다. 1969년 영국 신문 ‘더 선’을 인수해 타블로이드로 판형을 바꾼 뒤 ‘페이지 스리 걸(Page 3 girl)’이란 걸 만들었다. 세 번째 면에 매일 가슴을 풀어헤친 여자 모델의 사진을 실었다. “너무 난잡하다”는 비난이 쏟아졌으나 1년여 후엔 아예 토플리스 사진을 넣기 시작했다. 판매부수가 급증하면서 적자에 허덕이던 신문은 흑자로 돌아섰다. 독자들이 겉으론 비난하면서도 실제로는 은근히 즐겼던 거다.
로멘스 소설의 고전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쓴 영국 작가 로런스는 “사랑을 나눌 때의 추악한 자세는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농지거리”라 했다. 한편으론 감추고 다른 한편에선 엿보면서 이성과 본능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게 성적 본능이란 의미였을까. 관음증은 인간만 갖고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문제는 인터넷 발달이 관음의 수단과 도구를 무차별 확산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본능의 영역이라 해도 정도가 지나치다.
방송인 A씨 동영상은 우리 사회의 과도한 집단 관음증을 거듭 확인시켰다. 해외 사이트에 올라온 지 하루도 안돼 SNS를 통해 순식간에 퍼졌다. TV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통해 사생활 엿보기에 익숙해 있어서인지 이를 받아보고 퍼나르면서 별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 그렇다고 사사건건 강력 처벌로 대응하기도 어렵다. 가뜩이나 온갖 괴담들이 SNS를 타고 번져 뒤숭숭한 요즘이다. 자정(自淨)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사회에선 SNS가 흉기로 돌변할 수도 있다는 걸 경계해야 할 일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