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K팝 자랑스러워…소시·원더걸스 나도 알죠"

한경과 맛있는 만남

대외 직함만 70여개…아직 조찬모임 열심히 나가

의료기술 세계 최고인데 해외환자들 놓치니 '답답'

우리같은 개방형 국가가 두려워 할 게 뭐가 있나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경기고 2학년 때인 1957년 서울대 법학과에 합격하는 바람에 정식 졸업장이 없다. 나중에 명예졸업장을 받아 수료로 돼 있다. 고시는 보지 않았다. 1962년 졸업 후 한일은행과 삼성전자를 거쳐 1977년 38세에 안국화재(현 삼성화재) 사장이 됐고 52세 때인 1991년 부회장 자리에 올랐다. 1993년 CJ로 옮겨 대표이사 부회장을 계속 맡았고 이듬해 55세 때 회장 직함을 단 뒤 17년째 유지하고 있다. 2005년부터 대한상의 회장을 맡고 있고 올해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에도 위촉됐다. 대외 직함만 70여개다. 올해 나이는 72세. 손 회장에 대한 ‘무릎팍도사’식 건방진 프로필이다.

손 회장과의 ‘맛있는 만남’은 서울 인사동 골목의 한정식집 ‘두레’에서 이뤄졌다. “오래 알고 지냈지만 최근에 자주 오진 못했습니다. 친구들과의 친목모임이나 편한 자리가 있을 때 종종 찾습니다.” 손 회장은 이날 자리를 비운 음식점 사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기도 했다. 용봉탕과 칠향계, 과메기와 구절판, 갈비찜과 조기구이까지 입맛을 돋우는 요리들이 가득한 가운데 손 회장의 젓가락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파전이었다. 나란히 누운 쪽파 위에 잘게 썬 오징어가 듬성듬성 얹힌 파전의 맛은 담백하면서도 속깊은 손 회장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장이 낮은 개조 한옥 방에서 손 회장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화려한 프로필…남은 아쉬움은

손 회장은 이재현 CJ 회장의 외삼촌이다. 누나인 손복남 씨(CJ 고문)가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장남 이맹희 씨와 결혼했다. 선친은 농림부 양정국장, 경기도지사 서리를 지낸 손영기 씨다. 유학 후 삼성전자를 거쳐 삼성화재에 몸담은 손 회장은 계열분리 때 회사를 옮겨 조카 이재현 회장과 함께 CJ를 재계 순위 16위 그룹으로 키워냈다.

많은 것을 이뤄냈지만 지금도 일 욕심이 많다. “매일 상의로 출근하지만 CJ 사무실에도 거의 매일 갑니다. 조찬 모임도 많고 포럼이나 세미나도 가능하면 참석하려고 하죠. 경제뿐 아니라 돌아가는 사회 분위기를 읽고 흐름을 파악해야죠. ”

손 회장은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 세제발전심의위원장, 환경보전협회 회장, 농촌사랑범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 통일고문회의 고문,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위원 등의 대외 직함을 갖고 있다. 경제와 산업, 환경과 교육까지 범위도 넓다. 완벽해 보이는 손 회장에게도 아쉬움이 있을까. “외국어가 아쉬워요. 젊었을 때 영어를 원어민 수준까지 끌어올렸어야 했는데. 그땐 지금처럼 영어 강의가 흔치 않았고 교재도 없었죠.”(이현석 대한상의 전무는 해외 행사에서 통역 없이 외국인과 대화하는데도 원어민처럼 되지 않는다고 늘 아쉬워한다고 귀띔했다.)

모범생 손 회장도 대학시절 친구들과 함께 가끔 바둑을 두고 어울려 다니며 술도 꽤 마셨다고 했다. “동숭동 서울대 앞에 늘 가는 중국집이 있었어요. 당시엔 짜장면과 중국술을 시켜 먹고 시계를 맡겨 두고 가는 친구들이 많았죠. 언젠가 서울대박물관에 갔더니 예전 시계들이 있더라고요. 중국집 사장이 학생들이 놓고 간 시계를 기증한 것이죠.”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장 박진감 넘쳤던 시절로 화재 사장으로 일할 때를 꼽았다. “안국화재를 처음 맡았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중위권에서 선두로 치고 나갔으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제게 시달렸죠.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도 때가 되면 저를 찾고 연락하는 사람들이 또 그들입니다.”◆산 넘어 산 ‘규제 개혁’

손 회장은 대화가 규제개혁으로 넘어가자 지난달 말 한국경제신문이 현실과 맞지 않거나 중복된 규제들을 찾아내 집중 보도한 ‘전봇대는 살아있다’ 기획시리즈 얘기부터 꺼냈다.

“공감도 하면서 참 많이 배웠습니다. 규제를 아무리 완화해도 한편에서는 또 새롭게 규제들이 생기고 있거든요. 규제개혁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 않네요.” 지자체 조례에 담긴 규제, 행정 지침이나 예규들까지 모두 챙기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국경위는 두 가지 방향을 설정해 놓고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금지 요건에 해당하지 않으면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의 전환과 규제가 어느 시점에 가서는 끝나도록 하는 일몰제가 그것입니다. ”

손 회장은 제조업뿐 아니라 서비스 업종 규제도 지적했다. “영리의료법인이라는 용어 자체가 오해를 사서 그렇지 병원과 호텔로 의료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은 한국에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어요. 방콕은 의료 관광으로 연간 160만명이 찾는다고 합니다. 싱가포르는 60만명. 그런데 우리는 10만명이에요. 의료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인데 해외 환자들을 놓치고 있으니 답답하죠.”

◆“고용 늘릴 산업에 지원해야”

손 회장은 정부나 기업이 지금 전력을 다해야 할 과제는 다름 아닌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용 없는 성장이 문제인 만큼 투자를 확대해 일자리를 늘리는 게 우리가 할 일입니다. 고용을 많이 할 수 있는 산업 분야를 더 지원해야 합니다.”

국가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일 기회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꼽았다. 손 회장은 FTA 비준 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한 후 계속 이어지는 반대 시위 때문에 걱정이라고 했다.

“FTA 비준을 위해 올 들어 미국 의회도 찾고 지방 도시들도 가봤습니다. 처음엔 미국 의원들이 디트로이트에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라고 우려해 비준이 쉽지 않겠다 싶었죠.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면서 쉽게 풀렸습니다. 반대하던 의원들도 표결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았지요.”

손 회장은 “한·미 FTA는 격상된 한국의 위상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비스산업 품질도 올라갈 것입니다. 걱정하는 부분은 알지만 과거 월마트 까르푸가 들어왔을 때 어땠습니까? 세계적인 대형마트들의 기세에 기존 유통회사들이 다 망할 줄 알았지만 오히려 쫓겨난 건 그들이잖아요. 우리 같은 개방형 국가가 두려워 할 게 뭐 있습니까.”

◆"소득세 인상 안돼 … 세율 낮추고 세원 넓히는 게 바람직"

일부의 반(反)기업 정서에 대해서는 억울한 측면이 많다고 했다. “반기업 정서가 모든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경영 투명성이 높아졌고 대기업들이 앞장선 사회공헌 활동은 외국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라는 점을 알아줬으면 합니다.”

손 회장은 기업들이 더 잘해야 하지만 학생들에게 시장경제의 기본을 알리는 교육도 필요하다고 했다. 초·중학교 교과서부터 기업이 무엇이고 기업의 역할이 어떤 것이라는 점을 교육해 올바른 인식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소득세 인상에 대해서는 반대했다. “누구나 흔쾌히 세금을 내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세금이 너무 높으면 편법을 쓸 가능성이 높아지죠. 세율은 낮추고 세원은 넓게 가져가는 게 옳다고 봅니다.”

◆소녀시대·원더걸스, 그리고 태블릿PC

고희(古稀)를 넘긴 나이지만 손 회장은 여전히 젊다. 선물받은 것을 포함해 태블릿PC만 3대다. 종이신문 애호가지만 태블릿PC를 통해 뉴스를 보고 일정도 기록해 놓는다.

요즘 젊은이들이 끌어갈 미래에 대해서도 낙관하고 있다. “청년들의 창의적인 면들에 기대가 큽니다. K팝이 대표적이죠. 상상도 못할 일들을 해내고 있어요. 우리것에 대한 희망과 용기를 줬으니 의미가 큽니다. 소녀시대, 원더걸스, 저도 다 알죠.”

패기와 자신감은 좋지만 우리 경제를 일으켜온 기성세대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는 고언도 빼놓지 않았다. “기성세대가 쌓은 기반이 오늘을 있게 했습니다. 윗세대의 말을 경청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야도 넓혀야 합니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한 소통도 중요하지만 좁은 시야로 우리끼리 싸우기만 해서는 발전이 없으니까요.”

손 회장은 68㎏으로 체중 상한선을 정해 놓고 매일 음식과 운동으로 관리하고 있다. “피트니스센터에서 틈틈이 운동합니다. 보통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밤 10시 이후에 운동을 하죠. 체중이 적을수록 콜레스테롤이나 당 수치가 좋아진대요.”

손 회장은 집에서는 그저 좋은 할아버지다. “친손자와 외손자들이 모두 4명인데 주말에 손자들이 집에 오면 잘 놀아주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야 좋은 할아버지라는 얘길 듣죠.”

주말엔 가끔 골프도 친다. “거리가 전보다 많이 줄었지만 친구들과 가벼운 내기에서 돈을 잃은 적은 없다”며 환하게 웃었다. 경기고 동기인 김동건 아나운서, 윤영석 전 두산중공업 부회장, 유흥수 전 국회의원 등과 가끔 어울린다.

정치, 경제, 사회 문제부터 사적인 얘기까지 진솔한 얘기가 오가다 보니 어느덧 3시간여가 지났다. 자리를 파하기에 앞서 최근의 ‘안철수 바람’과 관련해 생각을 물었다. 손 회장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 대해 “머리가 굉장히 좋은 분 같다”며 “하지만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무슨 말을 했는지 잘 모르니 좀 더 기다려보고 이야기를 들어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 손경식 회장의 단골집 두레

신선로·칠향계…전통에 현대감각 더한 한정식집

두레는 전통 한옥 양식의 가옥을 개조한 한정식집으로 인테리어부터 전통과 현대적 감각이 어우러지도록 꾸몄다. 50여년 전 밀양에서 시작해 1988년 인사동으로 자리를 옮긴 맛집이다. 개량 한복을 입은 종업원들이 내오는 단아한 상차림에는 파전부터 단호박 도토리묵, 각종 나물과 돌갓김치 물김치 오이소박이 등 김치 종류도 다양하다. 구절판과 신선로, 칠향계 등 쉽게 맛볼 수 없는 메뉴들도 있다.

두레 정식으로는 작은 두레상(6만4000원), 큰 두레상(8만4000원), 으뜸 두레상(10만5000원), 두레 특별상(12만5000원) 등이 있다. 보다 간단한 점심정식은 따로 있다.

다채로운 메뉴들은 계절에 따라 바뀌어 오른다. 조미료를 쓰지 않아 정갈하고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그날 장을 봐온 재료로 요리해 항상 신선하다. 늘 같은 요리가 나오는 것이 아닌 만큼 특정 요리를 먹고 싶다면 전날 전화로 예약하고 미리 얘기해 두면 된다. (02)732-2919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1939년 서울 출생▶1957년 경기고 수료 1962년 서울대 법학과 졸업▶1962년 한일은행 입사▶1968년 미국 오클라호마주립대 대학원(MBA) 졸업▶1968년 삼성전자 근무▶1977년 안국화재(삼성화재) 대표이사 사장▶1991년 삼성화재 부회장▶1993년 CJ 대표이사 부회장▶1994년~현재 CJ 대표이사 회장▶2005년~현재 대한상공회의소 회장▶2011년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