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상수(上壽)노인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당신 세포의 생물학적 나이를 알려드립니다. 혈액 두 방울(2.7㏄)만 보내세요. 비용은 290달러입니다.’ 미국 병리검사업체 스펙트라셀이 얼마전 시작한 서비스다.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염색체 가닥의 양쪽 끝에 붙어 있는 텔로미어를 분석해 수명을 예측하는 방식이다. 텔로미어는 체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점점 짧아지다가 어떤 한계에 이르면 세포 자체가 죽는다는 데 착안했다. 의학계에서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 거세지만 텔로미어 분석을 통한 수명연구는 계속되고 있다.

인간수명의 한계,즉 최장(最長)수명에 대해선 논란이 많다. 지금까지는 120년이란 설이 대세였다. 대다수 동물이 성장기간의 6배 이상 살지 못한다는 게 근거다. 사람은 20세까지 성장하는 게 보통인 만큼 120세가 한계라는 것이다. 반면 생활여건 개선과 의학 및 생명과학 발달로 수명이 급속하게 길어진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인간 수명이 어디까지 늘어날지에 대해 학자들간에 내기까지 걸렸다. 미 아이다호대의 스티븐 오스태드 교수는 150세 이상 살 수 있다는 쪽에, 일리노이대의 스튜어트 올샨스키 교수는 130세를 넘지 못한다는 쪽에 걸었다. 내기 시점(2001년)에서 149년 후인 2150년 1월1일을 기준으로 150세까지 생존한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기로 했다. 이들은 각각 150달러를 신탁예금하고 매년 일정액을 납부해 2150년까지 5억달러를 만들어 이기는 쪽 자손에게 주기로 공증을 받았다.

논란이야 어떻든 초고령 인구는 자꾸 늘어난다. 1950년대만 해도 100세 이상의 상수(上壽)노인이 전 세계적으로 수천명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40여만명에 이른다. 2050년이면 600만명으로 증가할 전망(미 인구통계국)이란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통계청이 지난해 1836명이었던 상수노인이 2030년 1만2305명, 2050년 3만8125명, 2060년 8만4283명에 이를 것이란 추계를 내놨다. 향후 50년간 30배 이상 급증할 것이란 예상이다.

건강과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장수는 재앙이란 우려도 있다. 그렇다고 오래 사는 것을 마다할 이유도 없다. 중요한 건 당면한 삶을 얼마나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가다. 올해 100세인 일본의 시바타 도요 할머니는 99세에 낸 첫 시집에 이런 작품을 실었다.‘간호사가 목욕을/시켜 주었습니다/아들의 감기가 나아/둘이서 카레를/먹었습니다/며느리가 치과에/데리고 가/주었습니다/이 얼마나 행복한/날의 연속인가요…’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