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휴지 된 교토의정서, 녹색정책 전면 수정하라

정부는 교묘한 말장난으로 상황 변화 호도하지 말기를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저탄소 녹색성장을 새로운 국가 비전으로 제시했다.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이 만들어지고 녹색성장위원회도 출범했다. 5년간 107조원 이상 투자하는 녹색성장 국가전략도 발표됐다. 교과서에 녹색성장 내용이 반영되고 녹색교육이 교육평가 요소로도 등장했다. 이 대통령은 2009년 말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기후변화 회의에 참석해 한국이 교토의정서상 탄소 비의무감축국가이지만 국제사회가 권고하는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설정해 이행해 나가겠다고 야심차게 천명했다. 이 대통령이 제시한 감축량은 2020년까지 BAU(배출예상치) 대비 30%나 됐다. 개발도상국에 권고한 감축 범위 중 최고 수준이었다.

정부는 산업계의 반발을 무릅쓰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작업에 나섰다. 기업들이 할당된 탄소배출 목표를 사고파는 탄소배출권거래제 법안을 밀어붙여 왔고 기업들에는 온실가스·에너지 목표 관리제를 강제했다. 녹색 기술 투자에도 매년 2조원가량을 쏟아붓고 있다. 그러나 너무 앞서 나가고 있다는 것이 엊그제 남아공 더반 기후회의에서 분명해 졌다. 세계가 ‘돌격 앞으로!’ 를 외쳤는데 순진한 한국만 뛰어나가고 다른 나라는 모두 뒤로 숨어버린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교토의정서를 거부한 미국에 이어 일본과 러시아까지 탈퇴해버리고 말았다. 2015년까지 새로운 규약을 만들어 내기로 했지만 이는 말장난에 불과했다.배출권 거래제만 해도 그렇다. 일본은 지난해 12월 각료회의에서 배출권 거래제를 무기한 연기했고 미국도 오바마 대통령이 기후변화의 유일한 방안은 아니라고 언급하면서 무산된 상태다. 탄소 감축으로 인한 국내 기업들의 추가비용은 최대 14조원에 이른다. 철강생산량이 4%나 줄어들어 연 2조원의 매출감소와 5000명의 고용감소가 발생한다. 모든 산업계가 곤란을 겪는 건 마찬가지다. 배출권은 이미 투기시장이 됐다. 가격이 5배씩 널뛰기한다. 이런 투기 시장에 국내 산업계가 고스란히 노출된다는 것도 큰 문제다.

교토의정서가 사실상 휴지조각이 된 만큼 녹색 정책은 대대적으로 수정해야 마땅하다. 국회에 가있는 각종 규제와 악법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정부는 이 황당한 국면을 교묘한 언사로 얼버무리지 않아야 한다. 잘못된 흐름을 인정하고 조속히 바로잡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