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종류 鐵 배합·인체공학 구조…'쌍둥이 칼' 에 담긴 기술개발 D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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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t Practice] 독일 'J A 헨켈'70여년 전 한 회사가 오랫동안 식칼을 쓰더라도 쉽게 칼날이 무뎌지지 않는 기술을 개발했다. 섭씨 1000도의 고온과 영하 80도의 극저온을 오가는 특수 단조 공법을 사용한 것이다. 이 회사는 30여년 전에는 ‘칼은 한 종류의 쇠로 만든다’는 상식을 깨고 각기 다른 성질의 쇠를 이어붙인 주방용 칼을 선보이며 시장의 판도를 흔들었다.
"단순히 '잘드는 칼' 아닌 소비자가 원하는 칼을 만들자"
명품 '쌍둥이 칼' 탄생시킨 신념
부분마다 다른 鐵 레이저 봉합…고온 · 저온 오가는 특수 공법
美 · 유럽 이어 아시아로 눈돌려…맞춤 칼 제작으로 매출 12% ↑
고급매장 확대 … SNS 소통까지
칼 하나에 집착한 이 회사의 혁신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주부들이 식칼 특유의 금속 냄새를 꺼려한다는 분석이 나오자 이 냄새를 없앤 칼을 선보이기도 했다. 고급 주방용 칼의 대명사격인 ‘쌍둥이 칼’을 만드는 독일 J A 헨켈 얘기다. 이 회사는 280년간 ‘칼’과 관련한 기술 개발에 집중해 왔다. “단순히 잘드는 칼이 아니라 소비자가 원하는 칼을 만들자”는 게 이 회사의 목표다. ○‘소비자가 원하는 칼을 만들어라’
국내에서도 전문 요리사나 가정주부들이 가장 갖고 싶어하는 도구 중 하나로 꼽히는 게 ‘쌍둥이 칼’이다. 독일어로 ‘쌍둥이’를 뜻하는 ‘츠빌링(Zwilling)’이라는 브랜드가 붙어 있는 제품이다. 헨켈이 생산하는 이 칼은 우수한 품질의 주방용 칼을 뜻하는 대명사가 됐다.
헨켈은 1731년 설립됐다. 본사는 독일 베스트팔렌주의 소도시 졸링겐. 헨켈은 창립 이래 ‘쓰기 쉽고 오래가는 칼’을 만드는 데만 회사의 노력을 집중해 왔다. 처음에는 기사들이 쓰는 검을 만드는 것에서 시작했다. 세상이 바뀌어 기사들의 검이 필요 없어졌지만 ‘칼’을 놓지 않았다. 주방용 칼과 가위, 손톱 손질기구, 이발소용 면도기 등 ‘칼’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 결과 칼 하나로 세계 일류기업 대열에 올랐다.헨켈이 주방용 칼의 명품으로 자리잡은 비결은 소박하다. 변화하는 ‘소비자의 요구’를 따라잡은 것이다. 위생적이며 자르는 성능이 좋은 칼을 원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자 헨켈은 배합을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 물건을 자르는 성능은 좋지만 위생적이지 않은 무쇠칼과, 위생적이지만 절삭력이 약한 스테인리스칼을 배합하는 기술을 최초로 상용화했다. 위생을 고려해 세균이 번식할 틈이 없도록 칼자루와 손잡이의 접합면을 처음으로 제거한 것도 헨켈이다. 또 장기간 칼을 쓰더라도 몸에 무리가 가지 않고 피로를 느끼지 않도록 주방용 칼에 인체공학 디자인을 적극 접목했다. 1995년에는 따로 갈지 않아도 되는 칼인 ‘트윈스타’ 시리즈를 발매했다. 이 칼은 발매 후 독일 등 유럽의 고급 주방용 칼 시장의 40%, 캐나다 시장의 50%를 차지하며 헨켈의 대표 모델이 됐다.
○280년을 이어온 ‘기술개발 DNA’
‘쌍둥이 칼’의 명성은 끝없는 기술혁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외형상으론 그저 하나의 쇠덩이처럼 보이는 칼은 디자인이 아니라 철저히 성능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 제품이다.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선 높은 기술력에 집중하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에 따라 헨켈은 매년 매출의 6% 이상을 신제품 개발과 기술 혁신을 위해 투자하고 있다. 사람들이 ‘쌍둥이 칼’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날카롭고 무뎌지지 않는 칼날 △편안하게 손에 쥘 수 있는 인체공학적 디자인 △힘들이지 않고 요리 재료를 자를 수 있는 적절한 무게와 질감 등이다.
헨켈은 칼에 쓰이는 재료와 칼을 만드는 제조 공법 두 가지 측면에서 기술 혁신을 이뤄냈다. 명품 칼을 만들기 위한 재료부터 다르다. 일반적으로 주방용 칼은 한 가지 종류의 철로 제작한다. 그러나 헨켈은 에스체테(SCT) 공법이라는 독특한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칼을 세 부분으로 나눠 각 부분에 적절한 세 가지 종류의 철을 접합하는 것이다.
강한 강도와 절삭력을 가져야 하는 칼날에는 특수 강철을 사용하고, 칼의 목 부분은 녹이 슬지 않는 철을 사용한다. 부식이 가장 잘 일어나 칼의 ‘아킬레스건’으로 불리는 칼자루는 부식하지 않는 특성을 가진 쇠를 사용하는 방법이다. 헨켈은 각기 다른 세 부분의 접합 이음새를 최첨단 레이저 기술로 봉합한다. 1992년 이 기술을 도입한 이래 주방용 칼 시장의 판도를 바꿨다는 평을 듣고 있다.앞서 이 회사는 2차세계대전 이전부터 고온과 저온을 오가는 ‘프리오두르(Friodur)’ 공법을 선보였다. 칼날의 예리함이 오래 유지되는 비법으로 알려진 이 공법은 섭씨 1060~1080도에서 철을 가열한 뒤 실온에서 식히고, 이를 다시 영하 70도에서 냉각한다. 그리고 다시 80~310도에서 두 차례 가열하는 칼 제작법이다. 독특한 열처리는 칼의 강도를 높이고, 냉각과정은 칼의 신축성을 크게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
○아시아로 시장 다변화
시장에선 이미 ‘명품 칼’의 이미지를 확고히 굳혔지만, 헨켈은 시장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전 세계 2000여개 주요 매장의 각종 판매 동향을 파악하기 위한 전산 시스템을 구축했다. 시장의 분위기를 실시간 파악하기 위해서다.
시장 다변화를 위한 노력도 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굳힌 다음 고속 성장하고 있는 시장인 아시아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 이를 위해 아시아인들의 식생활에 맞춘 맞춤형 제품 수도 늘리고 있다. 2010년 매출이 전년 대비 12% 늘어난 3억9100만유로를 기록했는 데, 이는 중국시장의 성장 덕분이다.
유통 혁신에도 나서고 있다. 고소득자들을 중심으로 고급 제품 수요가 증가하자 미국 애틀랜타 등에 2000여종의 제품을 갖춘 종합매장을 설치하는 등 고급 매장 확대전략을 펴고 있다. 메이시백화점과 윌리엄스소노마 같은 미국 내 유행을 선도하는 대형 유통점을 통해 지속적으로 소비자들의 취향 변화를 체크하고 있다. 최근에는 트위터를 통해 소비자 반응을 분석, 헨켈 식칼 특유의 냄새를 주부들이 꺼린다는 것을 찾아내기도 했다. 식칼의 구성 성분을 바꿔 이 문제를 해결하는 모험을 하기도 했다. 헨켈은 다양한 기록도 갖고 있다. 1731년 요한 페터 헨켈이 졸링겐 길드에 쌍둥이 대장장이 마크를 등록했다. 이는 세계 최초의 등록상표(현재의 로고는 1969년에 등록된 것)로 기록됐다. 1851년 런던 세계박람회에서는 금메달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