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화, 11개월만에 1.3달러 무너졌다

재정통합안 시장 불신…심리적 마지노선 붕괴
이탈리아 국채발행 저조한 실적도 불안감 키워
유로화 가치가 11개월 만에 처음으로 유로당 1.3달러 선 밑으로 내려갔다. 지난주 영국을 제외한 유럽연합(EU) 26개국 정상들이 재정위기 해법으로 제시한 재정통합안에 대한 시장의 불안이 잡히지 않으면서 유로화 값의 ‘심리적 마지노선’이 무너진 것이다.

독일 경제일간 한델스블라트는 14일 “런던 외환시장에서 장중 달러 대비 유로화 가치가 1.2995달러를 기록했다”며 “이는 지난 1월12일 이후 처음으로 1.3달러 선이 붕괴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유로화 값은 지난주 EU 정상회의 이후 2.5%나 떨어졌다.이날 외환시장에서 유로화 값은 장 초반부터 급락을 거듭했다. 특히 심리적 저지선인 1.3달러 선이 속절없이 무너질 정도로 약세를 보인 것은 EU 각국이 제시한 재정통합안으론 위기를 당장 해결하기에 역부족이란 인식이 번진 탓이 컸다. 키드 주크스 소시에테제네랄 애널리스트는 “재정위기에 대한 EU 대응책의 신뢰성을 시장이 심각하게 의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1조9000억유로 규모 부채더미에 깔려있는 이탈리아를 둘러싼 불안도 다시 불거졌다. 이날 발행한 이탈리아 5년물 국채발행 실적이 시장의 기대에 못 미치면서 유로화 약세에 기름을 부은 것이다. 이탈리아 정부는 30억유로 규모 5년물 국채를 6.47% 금리에 발행했다. 입찰 경쟁률도 기대에 못 미쳤고 무엇보다 지난달 발행금리 6.29%를 뛰어넘는 높은 금리가 시장에 부담을 줬다. 이날 국채 발행금리는 유로화 출범 이후 최고치다.

이탈리아 정부가 추진 중인 300억유로 규모 긴축안도 난관에 부딛히면서 우려를 키웠다. 당초 무난한 통과가 예상됐던 긴축안이 이탈리아 상원 재정분과소위를 통과하지 못한 채 처리가 지연된 것이다. 여기에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조만간 프랑스의 국가신용등급을 최대 두 단계나 강등할 수도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도 사라지지 않으면서 시장 불안을 부채질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경제엔진인 독일마저 불안에 휩싸였다. 재정통합안을 둘러싸고 집권 우파연정 내에서도 이견이 불거지면서 연정의 한축인 자유민주당(FDP)의 당수가 교체되는 후폭풍이 닥친 것이다. 경제위기 속에서도 순항하던 독일의 경제활력도 둔화세가 뚜렷해졌다. 독일 일간 디벨트는 민간 경제연구소 이포(Ifo)경제연구소 전망을 인용, “내년도 독일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지난 10월 예측치인 0.8%의 절반인 0.4%에 불과할 것으로 예측됐다”고 지적했다. 이포연구소는 “유럽 정치권이 주요 정책결정을 늦추고 재정위기 사태를 복잡하게 만들면서 경기예측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